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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GMO인 듯, GMO아닌 듯

입력
2020.05.23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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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영어로 표기되는 사회적 논란의 대상을 한글로 옮기기 어려울 때가 있다. 19일 국내 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을 접하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주최는 ‘GMO반대전국행동’, 행사명은 ‘몬산토반대시민행진 GMO OUT’이었다. 무슨 내용일지 금세 짐작됐지만, 새삼 궁금해졌다. GMO? 직역하면 ‘유전자가 변형된 생명체’ 정도이고, 국내외에서 오랜 논란을 거치며 익숙해졌기에 그다지 전문용어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마땅한 한글 표현이 무엇인지 혼동스럽다. 공교롭게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이유를 제공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으로 ‘혁명’이란 수식어를 달고 찬사를 받아온 신기술이 있다. 사실 여기서부터 혼동이 시작된다. 크리스퍼/카스9 기술이라 흔히 알려져 왔고, 우리말로 유전체편집기술, 유전자교정기술, 유전자가위기술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모두 전문가들이 붙인 이름이다. 각각의 어원이 무엇이든 명명의 배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존’ GMO 기술과는 다르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는 점이다.

일상의 언어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편집이든 교정이든 가위를 사용하든 모두 유전자를 ‘변형’하는 행위 아닌가. 하지만 전문가들은 영어로나 한글로나 변형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몇 년 전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해당 기술을 소개한 기사의 제목, “이 음식들은 유전자가 변형된 것이 아니라 편집됐다”라는 표현에서 그 입장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유전자를 편집해 만든 지방산 함유 콩이나 잘라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 감자로 준비한 시식회를 소개하는 기사였다. 이런 선긋기의 배경에 두 가지 현실적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기존 GMO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령 제초제에 잘 견디도록 옥수수에 미생물의 유전자를 삽입할 경우, 옥수수의 원래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인체와 환경에 위험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이에 비해 신기술의 적용 과정에는 외래 유전자의 삽입 자체가 없어 논란의 대상이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기존 GMO에 적용되던 규제가 이번에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GMO의 수출입이 활발한 상황에서 그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한국과 유럽연합을 포함한 세계 171개국이 국제협약(바이오안전성의정서)에 가입했다. 협약에 따라 GMO의 국내 수입 또는 재배에 대한 승인 여부는 법적 심사 절차를 통해 결정된다. 그런데 신기술이 적용된 작물은 이와 달리 자유롭게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판단은 나라별로 제각기 이뤄지고 있다. 가령 미국은 외래 유전자의 삽입 없이 변형된 작물에는 기존 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방향을 정했다. 반면 유럽사법재판소는 삽입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규제가 적용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은 어떨까. 국제협약에 근거해 생각하면 유럽사법재판소와 같은 결론이 나온다. 협약 관련 법률에 명시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범주에 신기술이 적용된 작물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법률기관들의 검토 결과를 담은 2월 20일 자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 브리핑자료에 따르면, 외래 유전자의 삽입 없이 만든 작물도 기존 GMO에 포함하는 것이 법해석의 관점에서 합리적이라고 한다.

19일 기자회견에서 주최측은 ‘유전자가위기술을 사용한 것도 GMO라는 점을 명확히 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국제협약의 규정과 상통하는 입장이다. 사실 미국은 GMO 최대 생산국이면서도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참고할 사례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신기술에 대한 규제가 무엇일지에 대해 조속한 논의가 필요할 뿐이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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