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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의 B:TS] “넌 1깡? 난 7깡!”...비의 역주행, 조롱이 트렌드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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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의 B:TS] “넌 1깡? 난 7깡!”...비의 역주행, 조롱이 트렌드가 되는 법

입력
2020.05.22 16:19
수정
2020.05.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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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비의 '깡'이 3년 만에 밈 현상을 통해 소환되며 역주행 중이다. '깡' 공식 뮤직비디오
가수 비의 '깡'이 3년 만에 밈 현상을 통해 소환되며 역주행 중이다. '깡' 공식 뮤직비디오
※ 편집자주 = [홍혜민의 B:TS]는 ‘Behind The Song’의 약자로, 국내외 가요계의 깊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드립니다.

“1일 최대 몇깡 가능?”

‘깡’이 열풍의 중심에 섰다. 지난 2017년 가수 비(정지훈)가 음원을 발표한 지 3년 만이다. 과거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이 재조명 되는 경우야 왕왕 있지만, ‘깡’의 인기 역주행이 재미있는 건 공개 당시 다소 오글거리는 열정 퍼포먼스와 허세 넘치지만 유치한 내용의 가사로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 속 대중의 외면을 받았던 곡이라는 점 때문이다.

2017년 발매된 비의 앨범 ‘MY LIFE愛’ 타이틀곡인 ‘깡’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6개월 전 한 여고생 유튜버가 ‘깡’ 패러디 영상을 올리면서부터다. 비의 퍼포먼스를 재치 있게 패러디한 20초짜리 영상은 10·20대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21일 기준 유튜브 조회수 278만 뷰를 돌파했다. (2개월 전 공개된 ‘깡’ 풀 버전 패러디 영상 역시 276만 뷰를 돌파했다.)

짧은 패러디 영상의 흥행이 불러온 파급력은 거셌다. 최근 스마트폰과 SNS 등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문화 요소와 콘텐츠를 의미하는 밈(Meme) 현상은 ‘깡’의 본격적인 역주행에 힘을 실었다. 수많은 패러디 영상들이 양산되고, ‘깡’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유희하는 네티즌들이 늘어나면서 비가 선보였던 오리지널 ‘깡’에 대한 관심 역시 뜨거워졌다. 현재 ‘깡’의 오피셜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는 938만 회를 돌파한 상태다.

하지만 사실 당시 네티즌들이 ‘깡’을 소비한 형태는 조롱과 놀림이 주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Yeah 다시 돌아왔지/ 내 이름 레인 스웩을 뽐내 WHOO/ They call it 왕의 귀환 (...)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 30 sexy 오빠 (...)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라는 가사는 허세와 자아도취에 빠졌다는 이유로 놀림거리가 됐다. 소위 ‘힙합 스웨그’를 강조하고자 했던 비의 퍼포먼스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움과 다소 과한 설정으로 조롱을 당했다.

‘깡’ 뮤직비디오나 관련 콘텐츠를 보는 이유는 댓글을 보기 위해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 진성 팬이 작성했다는 ‘시무 20조’는 후진 없는 직언으로 조롱의 정점을 찍었다. 비를 위한 20가지 직언에는 ‘꾸러기 표정 금지, 입술 깨물기 금지, 화려한 조명 그만, 2020년 현실을 직시하기, 자아도취 금지, 프로듀서에서 손 떼기’ 등이 포함됐다.

밈 문화를 만나 숱한 패러디 영상을 양산하며 입소문을 타던 '깡'은 'UBD 사건'을 만나며 대중의 동정 여론을 업었다. 유튜브 채널 댓글 캡처
밈 문화를 만나 숱한 패러디 영상을 양산하며 입소문을 타던 '깡'은 'UBD 사건'을 만나며 대중의 동정 여론을 업었다. 유튜브 채널 댓글 캡처

밈 문화의 중심에서 뜨겁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깡’은 이른바 ‘UBD’ 사태‘를 만나며 뜻밖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UBD’ 사태란 통계청이 유튜브 채널의 ’깡‘ 뮤직비디오 영상에 남긴 댓글에서 조회수를 ’39.831UBD‘으로 표현한 사건이다. ’UBD‘은 비가 주연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관객수인 17만 2212명을 희화화 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인터넷 용어다.

대중은 국가 기관이 공식 계정을 이용해 한 개인의 치부를 희화화했다는 점에 분노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희화화와 조롱에 그쳤던 ’깡‘을 향한 대중의 반응은 이를 기점으로 우호적 ’열풍‘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비를 향한 대중의 동정 여론과, 그의 실력에 대한 재평가가 함께 일어나면서다. 여기에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가 ’깡‘을 향한 대중의 반응에 쿨하게 대처하는 모습까지 보이며 ’깡‘은 조롱을 벗고 트렌드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놀면 뭐하니?'에서 비는 자신의 '깡' 열풍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유쾌한 수용 태도로 조롱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깡' 역시 더욱 큰 화제성을 띄며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MBC 캡처
'놀면 뭐하니?'에서 비는 자신의 '깡' 열풍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유쾌한 수용 태도로 조롱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깡' 역시 더욱 큰 화제성을 띄며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MBC 캡처

자신을 향한 조롱성 ’시무20조‘ 댓글에 “우리 타협을 하자”고 유쾌하게 제안하고, 유재석을 향해 “1일 3깡은 해야 한다. 식후깡은 필수다. 그걸 하지 않으면 서운하다”라고 너스레를 떤 비에게도 대중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방송 이후에도 비는 자신의 SNS 댓글을 통해 팬들과 ’깡‘을 소재로 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1일 몇깡 하냐”는 질문은 조롱이 아닌 ’인싸(인사이더)‘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유행어가 됐다.

3년 전, ’시대를 역행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촌스럽게 느껴졌던 ’깡‘은 지금 그 무엇보다도 힙(Hip)하고 트렌디한 콘텐츠가 됐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어딘가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같았던 비 역시 ’쿨하고 유쾌한데, 여전히 실력까지 좋은‘ 아이콘으로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다.

역주행은 음원 차트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여겨지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밈 현상이 가진 파급력이 확대됨과 동시에 ’역주행‘과 ’전성기 강제 소환‘은 이제 언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에는 콘텐츠 소비문화가 단지 ’콘텐츠가 마음에 든다, 아니다‘가 아니라 콘텐츠 자체를 가지고 즐길 거리가 있거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냐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생산자들이 주도하던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콘텐츠가 재소환 되는 형태로 소비구조가 바뀌고 있다. 온라인 탑골공원, 양준일 신드롬 등도 이 같은 사례며, 앞으로도 밈 문화를 통해 역주행 또는 재소환 되는 사례는 더욱 다양화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대중의 ’강제 소환‘ 목소리에 응답할 수 있느냐는 각자의 재량에 달렸다. 문화 흐름에 대한 유쾌한 수용과 자신에 대한 객관화, 대중의 기대 속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는 실력까지 갖췄을 때 비로소 비와 ’깡‘이 그랬듯 트렌드의 중심에 당당히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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