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을 전격 확장한다. 원래 메모리 반도체 증산을 위해 경기 평택사업장에 짓고 있는 공장에 극자외선(EUV) 기반 초미세공정이 적용되는 비메모리(시스템) 칩 생산시설을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올해 초 경기 화성사업장에 EUV 전용 라인을 구축한 데 이어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조치로, 업계 추정으로 10조원 수준의 대규모 투자다. 최근 미국의 화웨이 제재 강화로 세계 파운드리 시장 판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만년 2위’ 삼성전자가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평택사업장에 신설 중인 반도체 공장(P2 라인)에 EUV 기반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갖추기로 결정하고 이달 관련 공사에 착수했다고 21일 밝혔다. 내년 하반기 본격 가동되는 이 시설에선 회로 폭 5나노미터(㎚)급 시스템 반도체 제품이 양산될 예정이다. 당초 P2 라인은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점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시설로 설계됐으며, 올해 하반기엔 EUV 공정을 적용한 D램을 양산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따라 P2 라인은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모두를 초미세공정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기흥(S1 라인)과 화성(S3ㆍS4ㆍV1 라인), 미국에선 오스틴(S2 라인) 사업장에서 각각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운영해온 삼성전자는 최근 EUV를 활용한 초미세공정 설비를 확충해왔다. 지난해 화성 S3 라인에 EUV 장비를 설치해 업계 최초로 EUV 기반 7㎚ 칩을 양산했고, 올해 2월에는 화성에 EUV 전용 라인(V1 라인)을 가동하고 올해 하반기 5㎚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회사는 올해 7㎚ 이하 제품 생산 규모를 지난해보다 3배 늘릴 방침이다. 여기에 내년 하반기 P2 라인 내 파운드리 설비가 가동되면 EUV 적용 칩 생산량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은 파운드리 시장의 핵심 경쟁력이 공정 미세화에 좌우되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세공정의 핵심은 회로 선폭을 줄이는 것으로, 선폭이 좁을수록 전력소비 감소, 처리속도 향상, 원가 절감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5세대(5G) 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의 발전으로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으로 반도체 기판에 회로를 새기는 EUV 공정은 이러한 미세공정의 첨단으로, 파운드리 시장 1, 2위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두 업체가 기술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를 앞둔 최소 회로 폭은 5㎚로 TSMC는 올해 상반기, 삼성은 하반기에 각각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차세대 3㎚ 공정 기술 개발에선 삼성전자가 앞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선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TSMC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 삼성전자 입장에선 시장 확장의 호기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1분기 기준 양사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4.1%, 삼성전자 15.9%다. 미국 정부는 최근 수출규정 개정을 통해 중국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차단했는데, 화웨이는 TSMC의 두 번째 큰손 고객으로 전체 매출액의 10~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 발표에 맞춰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냈다. 정은승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5㎚ 이하 공정 제품의 생산 규모를 확대해 EUV 기반 초미세 시장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전략적 투자와 지속적 인력 채용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의 탄탄한 성장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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