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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와 그 가족이 직접 밝힌다… 편견과 낙인이 더 무서운 조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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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와 그 가족이 직접 밝힌다… 편견과 낙인이 더 무서운 조현병

입력
2020.05.22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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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을 앓았던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
조현병을 앓았던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

조현병. 환각, 망상, 행동이상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상과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며 전세계 인구의 1% 정도가 앓고 있다.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의 ‘조현(調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2010년의 일로, 그 전까지만 해도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렸다.

어느 질병이든 간에 투병 이력을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현병의 경우 더욱 그렇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현병의 경우 환각과 망상에서 비롯한 공격성으로 범죄와 자주 연관돼 소개되는 탓에 병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에 앞서 막연한 두려움이 먼저 생기기도 한다. 최근 잇달아 출간된 조현병에 관해 솔직하고도 자세하게 고백한 책들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출간된 론 파워스의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가 환자의 아버지 입장에서 조현병을 관찰한 책이라면, 최근 출간된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와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각각 당사자와 자녀의 입장에서 조현병을 이야기한다.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아른힐 레우뱅 지음ㆍ손희주 옮김 

 생각정원 발행ㆍ264쪽ㆍ1만5,000원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는 노르웨이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아른힐 레우뱅이 과거 10년 간 조현병과 싸웠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레우뱅은 열네다섯 살에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해 열일곱 살에 처음 병원에 입원한다. ‘선장’이라는 가상의 존재로부터 채찍질을 당했고, 늑대를 보는 환시와 환청, 망상에 시달렸다. 심리학자를 꿈꿨던 우등생 소녀는 하루 아침에 회색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갇히며 개방 병동과 폐쇄 병동을 합쳐 6~7년 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된다.

증세가 심할 때는 격리 병동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레우뱅은 곁을 지킨 다양한 조력자들의 도움과 꾸준한 약물 치료를 통해 조현병을 이겨낸다. 퇴원 후 오슬로 대학에 진학했고 심리학 석사 학위를 땄으며 현재는 임상심리학자로 일하고 있다.

레우뱅의 회복을 가능케 한 것은 기적의 약물이 아니다. 병의 징후가 처음 나타난 10대 무렵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상담을 통해 치료로 이어지도록 도운 교육 시스템, 격리가 아닌 재활과 개방에 방점이 맞춰진 정신건강 관리체계, 무엇보다 조현병 환자를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노르웨이의 인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레우뱅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운동치료사와 작업치료사, 의사와 간병인, 사회복귀 상담사와 사회복지청 직원을 비롯한 무수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통해 병을 극복한 레우뱅은 이렇게 말한다.

“커다란 감정은 폭력적이고, 힘세고,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점을 배웠다. 바로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들을 받아들일 공간으로 충분히 갖추고, 자기 안에 이를 받아들이고, 품고, 자제력 있게 발산하는 사람들에게서”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수잔L.나티엘 지음ㆍ이상훈 옮김 

 아마존의나비 발행ㆍ445쪽ㆍ1만6,000원 

환자 못지 않게 함께 고통 받고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은 또 다른 당사자이기도 하다.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가족들 중에서도 조현병 환자의 아들인 남성 열두 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를 두었던 저자 자신을 비롯해 정신질환자들의 딸 스무 명을 인터뷰한 전작 ‘광인의 딸’에 이은 후속작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정신과 전문의였고 정신의학에 대한 많은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어머니는 돕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한 저자의 큰오빠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인터뷰이들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이들은 부모의 정신질환에 대해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그로 인해 자신의 슬픔과 혼란, 분노의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고 고립되고 만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편견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이를 ‘연대된 수치심’이라 부른다.

특히 딸들과 달리 ‘남자다움’이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아들들은 수치심을 극복하고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기까지 더 어려운 과정을 겪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이야기들이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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