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호 비망록’ 계기로 재점화… 추미애도 “과거 수사 관행에 문제”
일각선 “진술에만 의존한 판결 아냐… 필요하면 당사자가 재심 청구를”
더불어민주당이 20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조사를 공식 촉구하고 나섰다. 당 지도부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당시 사건 수사팀과 재판부를 향한 포문을 열었다. 검찰의 강압 수사 의혹을 부각시켜 검찰 개혁에 동력을 얻는 한편, 법원 개혁에도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진보 진영 아이콘에서 추락한 한 전 총리의 명예회복 길을 열어 주겠다는 뜻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단초가 된 것은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가 13일 공개한 ‘한만호 비망록’이다. 정치자금법 사건 핵심 증인 한만호씨는 비망록에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 약속 때문에 거짓 진술을 했다”고 썼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열린우리당 대선후보 경선 자금 명목으로 한씨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최근 열린민주당 대표에 취임한 최강욱 변호사가 당시 한 전 총리 변호를 맡았다.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년 원내대표는 비망록을 언급하면서 “(한 전 총리는) 검찰의 강압 수사와 사법농단의 피해자”라며 “법무부와 검찰, 법원은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길 바란다”고 했다. 박주민 최고위원도 “(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당시 여당(새누리당)과 청와대를 설득하는 데 키(열쇠)가 된 것이 한 전 총리 사건”이라며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문제제기는 법사위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법 집행 과정에 일탈행위가 있었는지, 수사 관행이 문제인지, 정치적 의도가 있었는지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며 국회 조사와 법무부 감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등을 패키지로 촉구했다. 송기헌 민주당 의원도 “현행법상 조사가 어렵다면 과거사 조사 절차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수사팀은 재조사 근거가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수사팀은 입장문을 내 “근거 없는 의혹제기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우선 △해당 비망록은 새롭게 발견된 문서가 아니라 1~3심에서 정식 증거로 채택돼 법원이 허위진술로 판단한 내용이며 △한씨가 이 허위진술 때문에 따로 기소돼 징역 2년을 확정 받은 만큼 재평가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고 △무엇보다 한 전 총리 유죄 판단의 결정적 계기는 자금 추적 내역 등 다른 증거들이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법정 상황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계기가 있으면 재심 가능성은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재판부 판단의 주된 근거는 한 전 총리 동생이 한씨가 발행한 1억원권 수표를 전세자금으로 쓴 점, 한 전 총리가 여러 자금 출처를 소명하지 못한 점, 한씨가 주변에 ‘한 전 총리에게 얼마를 돌려달라 했다가 실패했다’고 말한 점 등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권의 재조사 요구에 대한 법원과 법무부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법사위에 출석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재판도 오판 가능성이 있지만, 그 경우 증거를 갖춰 재심을 청하도록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며 재심 절차를 언급했다. 재심 청구는 증거물의 위ㆍ변조나 허위가 확인된 경우 등에만 할 수 있는 만큼 여권은 법무부와 법원, 공수처 차원의 재조사를 거듭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미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이라면서도 “국민은 검찰의 과거 수사 관행에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고 이해한다”는 말로 재조사 가능성에 여지를 열어뒀다. 추후 법무부나 공수처의 전격적 조사 착수로 ‘한명숙 재조사’ 정국이 달아오를 가능성도 상당하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