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기니 분관장이 주인공…화물기 타고 부임한 외교관도 다수
아프리카에 있는 작은 나라 적도기니 분관장으로 임명된 우홍구 대사대리가 자신의 부임지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87일. 적도기니는 가봉 주재 한국대사관 분관으로,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이 필요 없는 곳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인사 발령 후 1~2주 내에 부임이 가능한 자리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처럼 긴 시간이 소요됐다.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봉쇄 조치를 시행한 적도기니는 외교관에게도 입국 금지 예외를 두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바로 연결되는 직항도 코로나19로 사라졌다. 부임지까지의 여정은 말 그대로 ‘산 넘고 바다 건너는’ 길이었다. 2월 14일 발령이 났던 우 대사대리는 한국에서 업무를 보다, 가봉으로 이동해 대기했고, 결국 지난 10일에야 적도기니의 수도 말라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때마침 적도기니가 한국으로부터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수입하기로 하면서 우 대사대리의 입국도 승인했기 때문이다. 적도기니에 나가있는 쌍용건설 측이 적도기니 정부에 한국산 진단키트, 마스크 등을 기부하기로 하고 적도기니 정부는 특별기를 띄워 한국인 근로자 일부의 귀국을 도운 결과였다. 가봉 주재 적도기니 대사가 육로 이동을 함께 해준 지원도 결정적이었다.
20일 외교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부임지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공관장ㆍ외교관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 각 국이 취한 입국 금지 조치에다 이동할 항공편도 마땅치 않아서다.
일단 아그레망이 필요한 경우는 부임이 더 늦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초 내정된 대사 19명 중 3개월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그레망이 나온 이들은 9명뿐이다. 통상 아그레망을 받기까지 2주~2개월 정도 걸리지만 코로나19는 이러한 체계도 무너뜨린 셈이다.
최근 무사히 부임한 공관장은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하지 않은 미국의 안명수 휴스턴 총영사, 박경재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뿐이다. 총영사는 아그레망이 필요하지 않고, 아직 현지를 오가는 항공편이 열려있어 부임이 가능했던 경우다.
현장 외교관들도 부임이 쉽지 않다. 민간항공사의 운항이 정상화되지 않아 임시항공편 일정을 파악하며 부임 날짜를 잡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난 2월 강승석 신임 우한총영사가 구호물품을 실은 정부 화물기를 타고 현지에 부임한 데 이어, 지난달 24일에는 박호 주 러시아대사관 공사가 화물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2월 해외 근무지에 부임한 직원들이 아직 짐을 못 받았을 정도로 화물기 운항은 물론 외교행낭 운반도 중단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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