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공기업에서 일하다 2016년 정년퇴직한 뒤 아파트ㆍ빌딩ㆍ터미널 경비원 등으로 일해온 조정진(63)씨가 최근 펴낸 ‘임계장 이야기’는 열악한 노인노동현장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다. 이달초 한 아파트 경비원의 비극적 선택으로 주목받는 입주민들의 갑질 횡포를 비롯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겪는 장시간 노동과 고용 불안, 위험하고 불결한 작업환경 등을 증언한다. 조씨는 퇴직 후 얻은 첫 블루칼라 일자리인 터미널 탁송회사에서 ‘임계장’으로 불렸는데, 이는 ‘임시계약 노인장’의 약칭이자 멸칭이다.
□ 최저임금 수준 대우(평균 임금 155만원ㆍ2018년)에 30여 가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비직은 대표적인 저임금ㆍ장시간 일자리다. 경비직 평균연령(63세)이 보여주듯 이 일자리에는 노인들이 몰려 있다. 높은 숙련도는 필요 없으나 과중한 업무량으로 청년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조씨는 자신 세대를 ‘늙은소’에 비유하며 “여물만 제때 주면 제 주인을 제대로 섬기는 충직한 노복이 바로 고령층”이라고 자조한다. 아들 대학 학비를 벌려고 임계장이 된 그의 경험은 노인일자리의 취약성만 환기하는 게 아니다. 그런 자리에서라도 일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노인빈곤 문제다.
□ 고령화사회에서 노인 노동력의 활용은 긴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노인들이 너무 가난해 생계 때문에 일을 해야 하고, 일자리의 질도 나쁘다는게 문제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 참가노인의 79.3%가 생계비 때문에 일하고 있고, 60세 이상 임금노동자의 68%가 비정규직이다(이승윤 ‘한국의 불안정 노동자’). 공적연금의 미성숙, 수명 연장, 사적 부양의 축소 등이 결합돼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노인빈곤율 국가로서 수많은 임계장들을 낳고 있다.
□ 그나마 희망적인 건 국민연금 수급자 증가, 기초연금 확대 등으로 더디지만 노인빈곤율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45.6%였던 65세 이상 상대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ㆍ가처분소득 기준)은 2017년 39.1%까지 개선됐다. 갈 길은 멀다. 특히 사회보장제도 확충 이전 세대들을 위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폐지, 기초연금 강화, 주택연금 활성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써야 한다. 임계장들의 비참한 현실을 수수방관하면서 선진국 자격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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