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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의 공존의 지혜] 장애,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입력
2020.05.20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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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대한민국의 안면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1급 장애인이다. 장애 1급이라고 적혀진 신분증도 있는 등록장애인이다. 한우 1등급도, 내신 1등급도 아닌 장애 1급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1등급이다. 하지만 나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피부이식술을 받고 얼굴 ‘90%이상의 면적에 변형이 있는 사람’으로 너끈히 그 기준을 통과했다. 처음 장애인으로 등록할 당시에는 아직 안면장애가 인정되지 않았던 때라 짧아진 손가락이 얼마나 움직이는지, 팔이 굽어지는 각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지체장애 3급을 받았었다. 의사를 만나 검사를 하고 장애인으로 등록을 한 후 처음 복지카드를 받던 날, 정말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았었지만, 정작 내가 잃은 것이 장애 3급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억울하기도 한 복잡미묘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7월부터 이런 장애 등급제도는 단계적으로 폐지의 수순을 밟고 있다. 단지 의학적 기준만으로 획일적으로 서비스의 필요 여부를 따지는 장애인 등급제가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할 목적으로 등급제를 폐지하고 이제는 등급이 아닌 장애의 정도로 이야기한다. 사실 아직은 체감상 명칭만 바뀐 느낌이 강하지만, 아무튼 이제는 나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 중증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장애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나온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서는 걷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 장기에 발생한 질병으로 혹은 정신질환 등으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제약이 있는 사람 등을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장애를 바라보면 문제의 원인은 장애인 개인 안에 있다. 그 문제를 없애려면 손상된 부분을 수술을 통해 치료해야 하며 재활훈련을 통해 회복해야 한다.

이런 시각을 장애를 설명하는 개인적 모델, 의료적 모델이라고 한다. 이 모델은 장애는 개인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일로 보고, 손상은 곧 이동할 수 없고, 의사소통할 수 없는 등의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며, 이런 능력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손상이 생기면 할 수 없는 것이 생기고, 이는 곧 사회참여도 어려워지며 차별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장애는 그렇지 않았다. 장소가 바뀌어도 내게 생긴 손상은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지레짐작하고 쳐다보고 호기심으로 구경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의 나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나는 손상을 입기 전과 다름없이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었다. 장애는 내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는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장애가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 앞에 계단이 아닌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시각장애인에게 큰 활자의 책자가 제공되거나 보이듯이 음성으로 정보를 전달하면, 청각장애인에게 청인들이 수어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발달장애인이 학습하고 소통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도움이 있다면, 그래도 여전히 걷지 못하는 다리, 듣지 못하는 귀, 보지 못하는 눈이 문제일까? 사실은 정당한 편의 시설과 적절한 편의 제공의 부재, 부정적 인식과 편견으로 인한 차별이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 영어를 배울 때 장애인을 ‘the disabled’라고 배웠다. ‘무능력하게 된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사실 이 단어 뒤에는 ‘by society’가 덧붙여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은 손상에 의해 무능력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무능력하게 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시각이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다. 장애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것이고, 기존 사회구조의 변화와 환경의 개조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01년 WHO가 발표한 국제기능건강분류에서는 사회적 모델을 기반하여 질병 등으로 인한 개인의 손상의 정도와 더불어, 개인이 속한 문화나 사회정책 등의 환경적 요인과 성별이나 나이와 같은 개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여 환경 요인이 장애인에게 촉진 요인으로 작용하는지,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지에 따라 장애인의 기능 수행 또는 활동과 참여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흔히들 나를 사람들의 시선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장애를 ‘극복’해낸 사람이라고 말한다. 장애는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왜 장애는 항상 극복해야 하는 걸까?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환경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인을 배제하는 물리적 환경, 구별해 내고 다르게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사실상 장애이고 문제인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여전히 장애인 개인에게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며, 극복한 이들에게만 박수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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