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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태원 프라이버시

입력
2020.05.21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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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저우 역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QR코드로 승객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원저우 역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QR코드로 승객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열흘 전쯤 이태원발 코로나바이러스 집단감염 뉴스가 터져 나오자 확하고 짜증이 몰려왔다. 이전 며칠 동안 한 자릿수 밑으로 머물러 이제 끝나는 줄 알았던 기대가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 서울시가 해당 기간 이태원 지역에 30분 이상 머물렀던 1만905명 전원의 개인 식별정보를 전화 통신사로부터 받아 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온몸이 싸해졌다. 선득한 느낌의 근원은 내밀한 사생활, 프라이버시가 어느 순간 백주 대낮 만천하에 공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일 것이다.

바이러스 집단감염이 전국에서 발생하며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사생활은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서울 성동구에서는 얼마 전부터 PC방이나 노래방에 입장할 때 QR코드를 사용해 휴대전화로 인증하는 시스템을 시범운영하고 있고 곧 전체 유흥업소로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은근히 사생활은 부차적인 것, 나아가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듯하다. 사생활이나 프라이버시는 일부에게 그 발음조차 익숙하지 않을 정도인데 거기에는 우리 사회가 겪은 힘든 현대사가 한 이유로 작용할 것이다. 전쟁과 가난, 군사독재로 개인이나 사회나 생존하기 급급한데 무슨 사생활이냐는 인식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터이다.

사생활권을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하는지는 사회의 발전 양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개인의 법적 인권 보호에는 가장 확실한 나라로 알려진 미국의 헌법에도 사생활권(right to privacy)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권리로서 사생활의 범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며 그때그때 적용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의 근본적 필요성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철학자 루이스 호지스는 인간이 문명인으로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생활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 필요성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우선 개인의 자아를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관찰이나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사생활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변화는 나의 또 다른 모습, 미래의 상태를 끝없이 시도해 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타인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때는 이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와 평가, 그에 따른 재단이 두렵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사생활은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이 시민사회를 침탈할 수 없도록 막아내는 방패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거대 권력은 개인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개개인에 대한 영향과 조작, 통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라더와 같이 변해 가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방어막으로서 사생활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 권력에는 또 개인 정보를 집계, 대규모 데이터를 구축하는 거대 기업들도 포함된다.

지난주 말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오며 행인들이 밀려오자 기다리던 한 청년이 소리친다. “코로나는 가짜다. 인공위성 감시 수사하라!”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빌미를 위해 가짜 코로나 위기를 만들었다는 황당한 음모론이지만 그 두려움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부가 어느 순간 내가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에 대한 정보를 내 동의 없이 가져갈 수 있고 그 정보를 이후 어떻게 사용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결코 문명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국가의 활동은 인간다운 생활의 기본을 희생하지 않고도 바이러스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도록 시민의 사생활 보호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사생활의 권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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