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가슴도요는 매년 북극권에서 아르헨티나 남단까지 여행하는 나그네새입니다. 이들 중에는 조류연구자들이 ‘문버드(moon bird)’라는 별칭을 붙인 녀석도 있습니다. 지구와 달을 오가는 것만큼 먼 거리를 날았다는 뜻입니다.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려면 독수리만큼 큰 새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110그램에서 180그램에 불과합니다. 비행은 다리 근육을 비롯해 간과 장의 크기가 줄어드는 강행군입니다. 게다가 사방에 적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잠을 청할 때도 한쪽 눈을 뜨고 한쪽 발을 들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경제가 한치 앞이 불투명합니다. 명퇴 소식이 들리고 무급휴직자 명단을 발표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한쪽 눈을 뜬 채로 잠이 드는 붉은가슴도요가 이 나라의 경제 주체와 소시민의 현재 모습일 것입니다. 끝 모를 불경기를 가로질러 간과 장이 쪼그라드는 행군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붉은가슴도요에서 희망을 배웁니다. 이 연약한 새가 달과 지구만큼이나 먼 거리를 여행하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동료’입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잠을 청하면서 서로를 위한 보초 역할을 합니다. 함께 선잠을 자는 붉은가슴도요 무리는 수백 개의 눈과 귀를 가진 하나의 생명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가장 위험한 무방비의 시간들을 버텨냅니다.
의성은 언필칭 소멸 위기 지역입니다. 인구 구성도 어르신들이 많아 경제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데다 관광과 소비가 줄면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코로나19로 불어닥치는 불황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지 감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희망이 사그라든 것은 아닙니다. 오프라인 매출은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나마 온라인이 숨통을 트여주는 상황입니다. 의성군에서 운영하는 ‘의성장날’에서는 4월에 이미 지난해 매출 총액의 70%를 달성했고, 공영홈쇼핑에서 지난해 7회 전파를 탔지만 올해는 반응이 좋아 15회 이상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합니다. 기존의 유통망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얻은 성과라면 모르되 기존의 유통망이 말라버리다시피 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붉은가슴도요처럼 ‘동료’가 필요합니다. 신토불이라는 표현이 식상하다고 느끼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 농업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조금씩만 우리 농산물을 더 소비해주신다면 농업 붕괴와 지역의 소멸을 막는 고귀한 힘이 될 것입니다.
특히 출향민들의 관심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이왕 농산물을 주문할 것이면 고향을 한번 돌아봐 주십시오. 6월이면 전국 한지형 마늘의 26%를 차지하는 의성마늘이 쏟아지고,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자두도 이 시기에 출하됩니다. 이어 7월에는 의성 복숭아가 소비자를 찾아갑니다. 농산물은 출하기를 놓치면 일년 농사가 말 그대로 수포로 돌아갑니다.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고향과 한 몸이 된 것처럼, 한쪽 눈을 같이 떠주는 관심과 한쪽 다리를 같이 들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동료가 필요합니다. 누구 하나 어렵지 않은 이가 없겠지만, 서로를 위해 조금씩만 마음을 써 준다면 이 위기를 너끈하게 이겨낼 것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고향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뜨겁게 응원하고 격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주수 의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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