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우원식 등 당대표 후보군 李 행보 주시하며 출마 저울질
“유력 대권주자가 굳이 7개월짜리 당권 욕심” 당내 견제 목소리도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새 당대표 선출을 위한 8월 전당대회에 도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다. 이 같은 얘기가 흘러나오자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송영길(5선) 의원은 “이 전 총리가 출마하면 당대표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이 전 총리는 이르면 다음주 당대표 출마 여부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 측 사정에 밝은 민주당 한 관계자는 19일 “오는 8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쪽으로 이 전 총리의 마음이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게 이 전 총리가 견지해온 정치적 자세”라고 했다. 이 전 총리 측 다른 관계자는 “주변에서 당권에 도전해야 한다는 요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라며 “다만 지금은 당대표를 맡으면 정말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전 총리는 4ㆍ15 총선 전 당권 도전 후보자들에게 “당대표 선거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굳이 당대표 선거에 나서 후배 정치인과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민주당의 당권ㆍ대권 분리 규정 상 차기 당대표 임기가 대선 1년 전인 내년 3월로 제한된 것도 부담이었다. 당내에선 ‘유력 대권주자가 굳이 7개월짜리 당대표까지 맡아 전권을 휘두르려 하느냐’는 눈총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총선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자연스럽게 “당권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ㆍ사회 위기가 길어지고 있는 것도 변수였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기강이 풀릴 가능성이 높은 각 부처와 177석의 거대 여당을 장악해 코로나19 위기에 안정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군기반장’ 역할이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2004년 17대 총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작용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152석)을 차지했지만, 당 지도부의 허약한 리더십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교훈도 거론된다.
이 전 총리도 최근 당대표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그는 18일 광주ㆍ전남 당선자들과 오찬을 함께한 후 기자들과 만나 당권 도전 여부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뜩잖다. 뭐가 더 옳고 책임있는 행동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대표 출마가 대권 행보에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보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이나 국가에 필요한 역할인지 더 큰 고민을 해보겠다는 의미다.
이 전 총리가 당권 도전 의사를 굳혔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다른 주자들의 불출마 시사 발언도 나왔다. 2016년, 2018년에 이어 당대표 선거에 세 번째 도전하는 송영길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당의 신망을 받는 이 전 총리의 여러 결정이 존중돼야 한다”며 “조만간 이 전 총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내용을 정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가 당권에 도전할 경우 불출마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두 사람은 모두 호남 출신으로 지지 기반이 겹친다. 이 전 총리는 송 의원의 광주 북성중학교 9년 선배다. 다만 송 의원이 출마할 여지는 남아 있다.
우원식(4선) 의원도 이 전 총리의 출마 여부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의원은 당내 개혁그룹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좌장’ 격으로 당대표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부겸(4선) 의원도 당대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김 의원 측은 “당대표 출마와 대권 직행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했다. 친문(재인)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홍영표(4선) 의원은 이 전 총리의 출마 여부와 관계 없이 당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주변 의원에 밝혔다고 한다.
물론 이 전 총리가 최종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유력 대선주자가 당대표까지 맡으면 차기 대선 경쟁이 불공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전 총리가 당의 전면에 나서는 순간 당 안팎의 견제가 본격화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 전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조금 더 (당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당의 불확실성을 길게 야기하지 않기 위해 늦지 않게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