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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리그는 왜 검증 안 된 업체들에 당하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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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K리그는 왜 검증 안 된 업체들에 당하기만 할까

입력
2020.05.19 16:12
수정
2020.05.19 21:2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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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1일 문이 굳게 닫힌 서울 강남 세곡동 더페스타 사무실에 한국프로축구연맹 등에서 보낸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여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8월 1일 문이 굳게 닫힌 서울 강남 세곡동 더페스타 사무실에 한국프로축구연맹 등에서 보낸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여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로축구 K리그가 ‘호날두 노쇼’ 사건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검증되지 않은 신생업체에 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17일 무관중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성인용품으로 쓰이는 리얼돌이 설치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리얼돌 손에 들려있던 응원용 피켓엔 성인용품 판매 업체명과 이 업체 소속 BJ(Broadcasting Jockeyㆍ방송진행자) 이름이 적혀있어 논란은 증폭됐다.

A사가 관중석에 마네킹과 리얼돌을 설치한 게 화근이다. A사와 협력관계로 보이는 B사 이름 등이 응원용 피켓에 적혔는데, 결과적으로 B사 성인용품 홍보를 서울이 용인한 셈이 됐다. 홈팀인 서울 관계자는 “포털사이트에 검색이 안 되는 업체였다”며 업체검증 과정을 설명했는데, 달리 표현하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A사와 B사 때문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서울 구단, 더 나아가 K리그가 망신을 산 것이다.

17일 2020 K리그1 FC서울과 광주FC의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리얼돌로 추정되는 인형들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17일 2020 K리그1 FC서울과 광주FC의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리얼돌로 추정되는 인형들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이번 ‘리얼돌 논란’은 지난해 7월 유벤투스 방한 경기 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5)가 출전하지 않으면서 국내 축구팬들의 분노가 들끓었던 사건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당시 경기를 주관한 ‘더페스타’는 호날두 노쇼 사건 외에도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광고판에 노출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대회 운영을 펼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업체대표는 경기 직후 자취를 감추고 회사 홈페이지마저 닫으며 논란을 피해갔다.

이번에도 ‘리얼돌 논란’의 중심에 선 A사와 B사 등 관련업체들은 10개월 전 더페스타처럼 논란 하루 만에 홈페이지를 닫고 취재진 연락도 제한적으로 받고 있다. 서울은 관련 업체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적절한 처벌 또는 보상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도 결론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더페스타와 프로축구연맹의 소송전처럼 말이다.

지난해 8월 6일 더 페스타 홈페이지엔 이전까지 노출돼있던 협력사 정보가 전부 삭제됐다. 오른쪽 하단(푸른색 점선)은 협력사가 노출됐던 기존 홈페이지 모습. 현재 이 홈페이지는 폐쇄된 상태다. 더페스타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8월 6일 더 페스타 홈페이지엔 이전까지 노출돼있던 협력사 정보가 전부 삭제됐다. 오른쪽 하단(푸른색 점선)은 협력사가 노출됐던 기존 홈페이지 모습. 현재 이 홈페이지는 폐쇄된 상태다. 더페스타 홈페이지 캡처
최근 FC서울 홈경기에 리얼돌을 설치한 A업체 홈페이지. 현재 이 업체 홈페이지 또한 폐쇄됐다. A업체 홈페이지 캡처
최근 FC서울 홈경기에 리얼돌을 설치한 A업체 홈페이지. 현재 이 업체 홈페이지 또한 폐쇄됐다. A업체 홈페이지 캡처

일을 저지른 회사들은 이토록 쉽게 숨는데, 정작 37년 역사의 K리그와 한때 명문 구단이던 서울의 상처 회복은 어려워 보인다. 참여 업체의 그릇된 상술을 걸러내지 못한 게 아쉽단 평가다. 연맹과 구단을 거치는 과정에서 업체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란 얘기다. 관계자들이 업체의 실체를 알고도 내버려뒀다면 더 참담한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구단마다 후원 또는 협력을 가장한 얄팍한 홍보 상술을 걸러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들어오는 후원을 막을 이유는 없다지만, 일부 인사의 판단이 아닌 조직적인 검증시스템이 필요하단 얘기다.

서울과 A사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준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18일 “A사 관계자는 (연맹에 올 때)명함도, 샘플도, 홍보자료도 가져오지 않았다”며 “피규어 업체라고 밝혔기에 서울 구단과 A사를 연결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비슷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며 “(홈 경기 책임자인)서울에 대한 상벌위원회 개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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