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또한 생전에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일본 굴지의 대기업 소프트뱅크그룹을 이끄는 한국계 기업인 손정의(63·일본 이름 손 마사요시) 회장은 18일 시장 관계자들을 상대로 올해 1~3월 실적을 설명하는 컨퍼런스콜(전화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석 달 간 16조원 넘는, 일본 기업 역사상 최악의 영업적자를 낸 데 따른 우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세계 최대 벤처펀드인 ‘비전펀드’ 운용으로 황금기를 구가해온 손 회장은 스스로를 ‘예수’에 빗대며 회복을 자신했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인 대규모 투자손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다. 소프트뱅크는 중국 인터넷기업 알리바바, 미국 통신사 T모바일 등 비전펀드의 핵심 보유 주식을 매각하는 자구책을 내놨지만 회의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손 회장의 오랜 친구이자 알리바바그룹 창업자인 마윈이 13년 간 맡아온 소프트뱅크 이사직을 관두면서 시장 불안감에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전날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의 마지막 분기인 올해 1~3월 1조4,381억엔(16조4,2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의 분기 적자액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도쿄전력홀딩스의 1~3월 적자(1조3,872억엔)를 넘는 사상 최대 규모다. 2019회계연도 연간 영업손익 역시 9,615억엔(10조9,800억원) 적자로 창사 이래 가장 나쁜 실적을 냈다. 소프트뱅크가 연간 기준 적자를 본 건 15년 만이다.
이런 실적 악화는 비전펀드의 투자손실 탓이다. 1조4,000억엔 넘는 지난 분기 영업손실 가운데 1조1,000억엔가량이 비전펀드 투자기업의 가치 하락에서 비롯했다. 특히 부동산(위워크 오픈도어 컴퍼스 등) 부문과 공유차량(우버 디디추싱 그랩) 부문의 스타트업들이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펀드 전체 손실의 절반을 초래했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가 투자한 88개 회사 중 15개가량은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며 손실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소프트뱅크는 재무구조 악화를 막고자 비전펀드 자산 처분에 나섰다. 우선 손 회장과 마윈의 연결고리이기도 한 알리바바 주식 1조2,500억엔(14조2,700억원)을 팔아 현금을 조달했다. 또 미국 통신업계 3위 회사 T모바일의 주식을 독일 도이체텔레콤에 매각하기 위한 협상도 진행 중인 걸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가 미국 통신시장 진출을 위해 스프린트 인수(2013년)→T모바일과 합병(2018년·합병법인 T모바일)→미국 당국 승인(2019년) 등 오랜 공을 들여온 점을 감안하면 손 회장이 경영난 때문에 숙원 사업을 접는 셈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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