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대로 애초부터 불가능
‘방역 모범국’ 대만 끌어올리며
중국 때리기 공동전선 형성해
트럼프 “WHO는 중국 꼭두각시”
분담금 중단ㆍ탈퇴 시사 맹공
미국과 중국 간 격돌로 주목 받았던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옵서버 복귀가 무산됐다. 하지만 대만을 지원해온 미국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을 둘러싼 ‘중국 책임론’이 대만 자격 논란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또렷이 각인됐다는 판단에서다. 오히려 대만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중국이 떨떠름한 표정이다.
18일 세계보건총회(WHAㆍWHO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개막을 앞두고 초미의 관심은 대만의 참석 여부였다. 대만은 지난 1월 우한 봉쇄 직후 중국인 입국을 신속하게 차단하면서 방역 모범국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중국이 못마땅한 미국과 우방국들은 대만을 내세워 대중 공조를 강화해왔다.
서구의 여론몰이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WHA 참석은 애초부터 사실상 불가능했다. WHO 절차규칙에는 ‘옵서버는 사무총장의 초청으로 총회에 참석한다’고 규정돼 있다. 상위지침인 헌장에는 ‘유엔 회원국은 다수결로 WHO에 가입할 수 있다’고 적시했을 뿐 옵서버 관련 내용은 없다. 194개 WHO 회원국 간 표 대결에서 미국이 중국에 압도적으로 승리하더라도 사무총장이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한 1971년 유엔에서 축출된 대만이 총회에 참석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중국의 반대에 막혀 대만이 2017년부터 번번이 WHA 무대에서 좌절한 것도 그 때문이다. 더구나 현 WHO 사무총장은 중국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19일 “대만 내부에서도 중국이 반대하는 만큼 총회 참석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계가 명확했지만 미국 입장에서 대만 옵서버 카드는 중국을 압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2월 6일 주제네바 미 대표부대사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WHO가 대만과 직접 협력하라”고 포문을 열었고, 미 의회는 3월 ‘대만동맹국제보호강화법’을 통과시켜 국제사회 파트너로서 대만의 지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4월 들어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중국의 바이러스 유출 의혹을 제기했고, 이를 도화선으로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우방국이 ‘중국 때리기’에 가세하면서 중국은 코너에 몰렸다.
급기야 코로나19 발원을 규명할 독립조사기구를 구성하자는 호주의 제안에 122개국이 동참하며 중국과 WHO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이 확연히 드러났다.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이 바라던 시나리오다. WHA 기조연설을 거부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8일(현직시간) “WHO는 중국의 꼭두각시”라며 “우리는 1년에 4억5,000만달러를 내는데도 3,800만달러를 내는 중국보다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심지어 “30일 안에 중국으로부터 독립성을 증명하고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분담금 지원을 영구 중단하고 미국의 멤버십도 재고할 것”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WHO 사무총장에게 보냈다고 트위터에 공개했다. WHO를 손보려고 벼르던 미국에게 대만 문제가 명분을 제공한 모양새다.
대만은 외견상 중간에 끼인 듯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성과가 꽤 있다. 20일 차이잉원(蔡英文) 집권 2기 출범에 맞춰 국제사회와의 공감대를 넓히게 됐다는 점에서다. 중국의 공세에 밀려 수교국이 15개국까지 급감한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은 “중국의 압력으로 WHO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고 각국에 호소했다. 미국과 대만 모두 두고두고 중국을 괴롭힐 호재를 만난 셈이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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