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다음 달부터 집행할 예정인 가운데 법에 명시된 지원 업종을 7개에서 2개로 축소한 배경에 ‘통상 문제’가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지원하는 업종 범위가 달라진 건 아니다”라며 ‘연막 작전’을 폈지만, 실제로는 부처 간 논의 과정에서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면 제소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불가피하게 대안을 찾은 것이다.
◇지원대상 업종 7개→2개 축소
정부는 지난달 22일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 및 기업 안정 대책’으로 기안기금 조성을 발표하고 지원 대상으로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일반기계 △전력 △통신 총 7개 주요 기간산업을 꼽았다. 기금 마련을 위한 산업은행법 시행령 개정 예고안에서도 7개 업종은 그대로 포함됐다.
하지만 관계 부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개정안에선 지원 기간산업이 ‘항공’과 ‘해운’만 등장했다. 나머지 5개 기간산업은 금융위가 관계 부처 의견을 듣고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지원을 결정하기로 했다. 논란이 일자 금융위는 “7개 기간산업 중심으로 지원해 나간다는 방침은 여전하다”고 해명했다.
◇부처 논의 과정서 “통상문제 발생 우려” 제기
한국일보 취재 결과, 이 같은 변경은 ‘통상 문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종 개정안을 만들기 전 관계 부처끼리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의 우려는 이렇다. 정부가 특정 산업에 직접 현금 등을 지원한다는 점을 법 문구로 명시하면, 다른 국가에 속한 해당 산업의 기업들이 ‘불공정한 경쟁’을 하게 된다며 통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정부 지원 여부를 놓고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 정부가 제소를 당한 적이 있다. 지난 2015년 경영난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에 우리나라 금융권이 약 12조을 지원한 걸 두고, 일본 정부가 “국제적으로 저가 경쟁을 초래했다”고 통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항공, 해운은 통상문제 제기 가능성 낮아
이에 금융위, 산업부 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이미 각 국가에서 정부의 직접 지원이 진행되거나, 국제 공조가 이뤄지고 있는 산업은 통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으로 항공과 해운이다.
항공의 경우 미국은 자국 항공사에 보조금 약 30조7,000억원을 긴급 지급했고, 프랑스도 에어프랑스에 약1조5,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진행했다. 독일은 항공사에 대해 무이자 대출 기한을 연장했다. 해운의 경우 국내 항만에 머무는 해외 해운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국제 물류망’을 유지하기 위한 공조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장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고 △지원 후 고용 유발 효과가 크고 △통상 문제가 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조건에 부합하는 항공과 해운은 개정안에 남기게 된 것”이라며 “나머지 5개 산업도 지원 대상이라는 공감대는 그대로이고 굳이 명문화해 다른 국가에 시빗거리를 주지 말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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