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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화주의자 노무현

입력
2020.05.20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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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년을 맞이하면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노무현 정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다르고, 지지자 간에도 논쟁적이다.

5월 8일 노무현 재단이 진행한 유튜브 방송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요’에 참여한 이광재 민주당 당선인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 ‘태종 이방원’에 비유했다. 그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 같다”며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광재 당선인이 제기한 ‘노무현·문재인 태종론’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어쨌든 3년 동안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 저의 바람입니다”라고 밝혔다.

이광재와 강민석이 주고받은 태종과 세종에 대한 비유는 아주 사소한 문제로 보이지만 노무현 정신을 조선 군주 이미지로 격하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민주화가 된 지 한 세대를 넘어서 공화 단계로 이행하는 시점에서 노무현의 탈권위주의적 개혁정신을 군주정신으로 비유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들의 퇴행적 언행은 노무현이 공화주의자로서 한국정치에 던진 ‘성숙한 민주주의론’과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민통합론’의 화두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그들이 얼마나 노무현 정신에 무지한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지금까지는 민주 대 반민주 혹은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논리의 구도에서 ‘전투적 민주주의자’로서 전기(前期) 노무현 정신이 많이 조명되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 및 ‘상생과 국민통합’ 등으로 상징화되고, 학술적으로는 ‘비지배적 자유’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노무현의 공화주의 정신’이 소홀히 다뤄진 만큼, 향후에는 중기(中期) 노무현 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은 상생을 위한 협치 모델의 기원인 만큼,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이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노무현이 추구한 ‘공화주의 정신의 본령’이다.

노무현은 ‘공화주의’라는 학술적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연설문 중 ‘민주주의 1단계’와 ‘민주주의 2단계’를 넘는 ‘민주주의 3단계를 위한 제언’과 같은 언급처럼, ‘대화와 타협’ ‘상생의 민주주의’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공화주의를 표현했다. 그래서 그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학술적으로 공화주의가 강조하는 ‘비지배적 자유’는 노무현에게서 ‘상생’이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다. 2004년 5월 27일 노무현은 연세대 초청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배제의 습관이 남아서, 지금도 계속 배제하려는 방법으로는 상생할 수 없습니다. 상생은 결국 대화, 토론, 설득, 타협, 그리고 거의 다 합의가 된 것 같은데 마지막 결론이 안 날 때 그때 표결하는 겁니다. 그렇죠, 표결하고 승복하는 겁니다. 그 규칙을 무시하면 상생이 안됩니다.”

미국 헌법의 설계자인 제임스 매디슨이 ‘파벌의 해악’에서 벗어나고자 ‘공화주의적 대의제’를 제시한 것처럼, 노무현은 공화주의적 대의제를 위협하는 해악인 ‘지역주의적 파벌’과 ‘좌우이념주의적 파벌’에 맞서 싸웠다. 특히 노무현은 유작인 ‘진보의 미래’에서 “우리나라 진보가 ‘진보원리주의’라는 정통 구좌파에 빠져서는 안 되며, ‘제3의 길’과 같은 ‘유연한 진보’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선상에서 한미 FTA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정책도 나왔다.

이런 그의 언급은 정치권이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지 않게 ‘선악의 이분법’으로 진영논리적 기득권만을 취한다는 비난을 극복하는 데, 대안을 주는 만큼 더 새롭게 계승돼야 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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