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프로야구는 현장의 목소리가 중계방송을 타고 안방까지 생생히 전달된다. 심판과 주루 코치는 방송 마이크를 찬 상태로 경기에 임하고, 감독은 경기 중 인터뷰를 한다. 또 더그아웃 내 선수단 응원 소리도 관중이 없어 날 것 그대로 들린다. 야구 팬들은 덕분에 ‘집관(집에서 관람)’으로도 충분히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잇달았다. 개막 전 류중일 LG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서로 ‘파이팅’ 하고 격려하는 건 좋지만 상대 선수의 이름을 부르거나 도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상대를 향한 야유는 17일 대전 롯데-한화전 중계방송에서 흘러나왔다. 8회초에 롯데 전준우에게 홈런을 맞은 한화 투수 박상원이 이대호를 상대할 때 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롯데 더그아웃에서 박상원을 향해 “울어, 울어”라는 소리가 나왔다. 이에 전준우가 “하지 마, 하지 마”라고 자제시키는 모습이 보였다. 또 9회초엔 롯데 한동희가 한화 구원투수 김진영을 상대로 동점 홈런을 친 이후 “에이스, 공 좋아”라고 비꼬는 육성이 들렸다.
이 정도 야유, 조롱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관중의 함성 소리에 묻혀 양 팀 선수들은 물론 팬들도 쉽게 들을 수 없었다. 이에 따른 제재도 없었다. 다만 지난해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 중 두산 선수들을 향해 “팔꿈치 인대 나갔다” “2년 재활” “최신식 자동문”이라고 도를 넘은 ‘막말’을 했던 키움 송성문은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엄중 경고와 제재를 받았다.
심판은 말 한 마디로 2군에 강등되는 일까지 생겼다. 14일 부산 두산-롯데전에서 주심을 맡은 오훈규 심판위원은 2회초 두산 공격 때 최주환의 삼진 판정을 두고 논란을 야기했다. 최주환은 롯데 선발 박세웅의 포크볼에 방망이를 돌렸고, 롯데 포수 정보근은 원 바운드된 공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오 심판은 정보근에게 바운드됐냐고 물었고 정보근은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바운드로 잡았다고 답했다. 둘의 대화 내용이 중계방송 마이크를 통해 안방에 공개되자 팬들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심판이 먼저 정확하고 소신 있게 판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판정의 근거를 선수에게 묻는 장면에 비난 여론이 들끓은 것이다.
예전처럼 마이크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논란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부글부글 끓는 민심을 확인한 KBO는 이튿날 오 심판을 2군으로 강등시켰다. 현장에서는 지난 7일 한화 이용규의 볼 판정 관련 작심 발언에 따른 심판 강등에 이어 또 한번 같은 조치가 취해지자 “심판도 사람인데 위축될 수도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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