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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비젠 토믹의 세기의 절도(5.21)

입력
2020.05.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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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이라 불린 비젠 토믹이 10년 전 오늘 훔친 피카소의 '비둘기와 완두콩'(사진) 등 5점은 공식적으로는 영영 사라졌다. 위키피디아
'스파이더맨'이라 불린 비젠 토믹이 10년 전 오늘 훔친 피카소의 '비둘기와 완두콩'(사진) 등 5점은 공식적으로는 영영 사라졌다. 위키피디아

세계적 미술관에 걸린 유명 화가의 그림들, 예컨대 피카소나 마티스,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훔치려면, 절도의 기량보다 먼저, 작품 값어치만큼 아득히 높은 동기가 필요하다. 짐작할 만한 주요 동기는 물론 돈이지만 그만한 장물을 유통시키는 데는 훔치기보다 훨씬 힘든 수고와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법의 심판이나 죄의식에 주눅들지 않을 만한 배짱과 두둑한 돈, 바닥의 윤리의식, 혼자 고독하게 바라만 봐도 무아의 ‘유포리아’에 빠져들 만한 예술적 열정까지 갖춘 구매자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 동기는 어쩌면 절도 행위 자체가 주는 변태적 성취감, 이를테면 ‘자아실현’의 도전의식과 무모함일지 모른다. 저 모든 희박한 확률이 기적적으로 겹친 21세기 최악의 명화 절도사건이 2010년 5월 21일(현지시간 20일 밤) 프랑스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일어났다.

피카소의 1912년 작품 ‘비둘기와 완두콩’과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 앙리 마티스의 ‘목가’와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올리브 나무’,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게 있는 정물화’ 등 5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듬해 5월 체포된 범인은 절도 전과 14범의 비젠 토믹(Vjeran Tomic, 1968~)이었다. 10대 때부터 파리 공동묘지의 화강암 능묘들을 오르내리며 놀았다는 그는 맨몸으로 벽을 타고 건물을 옮겨 다니는 이동 기술인 ‘파쿠르(Parkour)’의 대가였고, 현지 언론은 그를 ‘스파이더맨’이라 불렀다. 한 골동품상(Jean-Michel Corvez)이 그에게 주문한 건 ‘레제’의 작품 단 한 점이었지만, 자칭 ‘그림 애호가’인 토믹은 절륜의 절도술에 도취된 만큼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에 매료됐다고, “모딜리아니의 여인이 ‘그냥 가면 후회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고 훗날 말했다. 그림을 나눠 보관한 한 시계업자(Yonathan Birn)까지 공범 3명은, 몸만큼 가벼웠던 토믹의 ‘입’ 때문에 체포돼 2007년 각각 6~7년의 징역형과 감당하지 못할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림은 영영 사라졌다. 범인들은 체포 직전 그림들을 쓰레기 수거함에 버렸다고 자백했지만 경찰이 확인했을 땐 이미 ‘처리’된 뒤였다. 누군가 은밀히 그것들을 감춰 두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희망)하는 이도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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