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딱한 발언들이 우려와 조롱을 산 바 있지만, 정작 그의 심각한 위협은 팬데믹 사태로 악화한 경제난을 빌미 삼아 잇달아 꺼내 놓고 있는 각종 환경 규제 완화다.
지난 3월 말 발표한 자동차 연비 기준 완화가 그 예다. 그는 전임 오바마 정부가 기후 위기 대책의 일환으로 2012년 마련한 자동차 평균연비 규제, 즉 2025년까지 갤런당 54.5마일(리터당 약 23.3km)까지 올리도록 한 기준이 “자동차 제조업체와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준다”며 현행 기준인 갤런당 37마일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기후 위기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수차례 공언해 왔다. ‘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는 책으로 지구 온난화가 인류에 덕이 된다고 주장했던, 최근 작고한 기후 위기 부정론자 프레드 싱어(Fred Singer)가 트럼프 정부의 기후 자문 환경과학자였다. 트럼프는 그런 주장들을 환경정책 퇴행의 효율적인 근거로 활용해 왔다.
앞서 그는 근해 시추 및 해안 송유관 사업 규제도 2010년 이전 수준으로 완화했다. 2010년 수준이란 미국 사상 최악의 환경 재난으로 기록된 영국 정유회사 BP의 멕시코만 원유 1.3억갤런 유출 사건 이전을 의미한다. 그 사고로 인부 등 11명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양생물이 희생됐고, 멕시코만 생태계는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5년 뒤인 2015년 5월 19일에는 한 송유관회사의 원유 수송관이 파열돼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해안 인근의 로푸지오 주립 해양공원 해상에 원유 14만갤런(약 530만리터)이 유출됐다. 부식된 송유관 약 60cm가 파열되면서 일어난 그 사고로 약 25㎢ 면적의 해변이 두 달 넘게 폐쇄됐고, 숱한 해양 생물이 희생됐다. 사고 직후 연방 정부는 송유관을 해안선과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게 하는 등 안전 기준을 강화했다. 트럼프 정부는 그 강화된 규정도 원상태로 되돌리고, 사고 기업의 법적 책임마저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나 해양 등 거시 환경의 악화는 인류 전체가 ‘장기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다. 그 ‘장기간’이 그리 장기적이지 못하리라 내다보는 이들도 많다. 코로나 사태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지만, 더 큰 비극은 팬데믹 이후, 산업계의 ‘백래시’일지 모른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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