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상금 30억’ KL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 가운데 유독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박현경(20ㆍ한국토지신탁)이 마침내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지난해 동갑내기 조아연(볼빅)이 2승과 신인왕을, 임희정(한화큐셀)이 3승을 차지하는 사이 우승이 없어 남몰래 눈물 흘렸던 박현경은 겨우내 스윙을 교정하고, 정신력을 가다듬은 끝에 한국 프로골프 역사상 가장 많은 총상금(30억원)이 걸린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박현경은 17일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파72ㆍ6,607야드)에서 열린 KL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기록, 최종합계 17언더파 271타로 우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재개된 골프 대회에서 ‘메이저 여왕’으로 올라선 것. 프로 2년차 첫 국내대회에서 우승상금 2억2,000만원의 주인공이 된 그를 향해 동료들은 붉은 장미꽃잎을 뿌리며 아낌없는 축하를 건넸다. 김리안(21) 등 그의 절친들은 자신의 일처럼 함께 눈물을 쏟기도 했다.
대역전 드라마였다. 최종라운드를 임희정(15언더파)에 3타 뒤진 12언더파 공동2위로 시작한 박현경은 이날 초반부터 임희정과 불꽃 튀는 샷 대결을 펼쳤다. 임희정이 1, 3번홀 버디를 잡으며 5타 차로 달아나자 박현경은 4, 6번홀에서 내리 버디를 잡아내며 임희정을 따라잡았다.
첫 승부처는 파5 7번홀. 직전까지 선두 임희정과 3타차를 기록하던 박현경이 버디를 잡아냈고, 임희정이 3퍼트로 보기를 기록하며 한 타 차로 따라붙었다. 후반 들어 박현경은 11~13번홀에서 내리 버디를 따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임희정은 파4 13번홀에서 또 다시 보기를 기록하며 전세는 뒤집혔다. 1,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던 배선우(26)의 추격까지 받았지만, 박현경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임희정에 한 타 차, 배선우에 두 타 차 앞선 상황에서 들어선 18번 홀에서 파를 지켜내며 공동2위 임희정 배선우와 한 타 차 짜릿한 우승을 완성했다.
박현경은 우승 직후 캐디를 해준 아버지 박세수씨와 포옹하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 눈물은 스코어카드를 낼 때도, 시상식 때도, 방송 인터뷰 때도, 기자회견 때도 이어졌다. 그만큼 이날까지의 마음고생이 심했단 얘기다. 그는 이달 초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해 동기들이 8승을 합작하는 걸 지켜보며 속상하고 답답했던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웃는 상’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은인은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ㆍ솔레어)이다. 지난 겨울 이시우 코치 아래서 함께 훈련하게 되면서 가까워진 고진영은 박현경을 유독 아꼈다. 다른 이유 없었다. 신인 때 동기들 사이에서 유독 빛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옛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고진영 역시 KLPGA 데뷔 시즌 김민선(25ㆍ한국토지신탁) 백규정(25ㆍSK네트웍스)에 뒤처졌기에 박현경의 심경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박현경은 그런 고진영의 응원을 등에 업고 겨우내 중심 축이 잡힌 스윙을 완성해 비거리를 늘렸고, 아이언의 정확도와 일관성을 높였다. 대회 후반에 무너지는 일을 막기 위해 오후마다 혹독한 체력훈련도 매일 소화했다. 이날 우승을 거머쥔 박현경은 “하루 전 고진영 언니와 통화했는데, ‘우승 하지 말라’고 얘기하면서 우승에 대한 강박을 갖지 말라”고 조언해줬다고 했다.
이번 우승으로 시즌 전 목표로 뒀던 위너스클럽에 가입하게 된 박현경은 “지난해 아쉬움을 새 시즌 첫 국내대회에서 떨친 것 같아 감격의 눈물을 쏟은 것 같다”며 “대회 1라운드날이 엄마 생신이었는데, 우승으로 선물을 전할 수 있게 돼 더 기쁘다”고 했다.
양주=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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