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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진보란 무엇인가

입력
2020.05.18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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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지난달 15일 서울 영등포구 다목적베드민턴체육관에서 21대 총선 개표작업이 진행 중이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달 15일 서울 영등포구 다목적베드민턴체육관에서 21대 총선 개표작업이 진행 중이다. 홍인기 기자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 저런 질문은 질문으로서 그리 좋은 게 아니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이후 ‘~란 무엇인가’가 유행했대도 그렇다. 궁극적인 화두를 던지는 질문은 대개 어느 정도 사회문화적 지위가 있는 이들의 화법이다. 그래서 ‘~란 무엇인가’ 류의 질문은, 정작 그 문제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겐 무용한 경우가 많다.

명절 차례 문제로 정말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집안이라면, 아마 늦은 저녁 사촌들끼리 저 먼 산 쳐다보며 “어른들 다 돌아가시면, 이거 그만 접자”고 넋두리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김 교수의 칼럼은, 그 칼럼에 깔깔거릴 수 있는 집안과 쓴웃음 지을 수 밖에 없는 집안을 대비시킬 지도 모른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창 화제일 무렵,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한 문장으로 샌델을 반박했다. “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ion)하기보다 가장 확실한 부정의 하나를 제거하는 게 더 정의롭다.” 주류 엘리트 경로를 밟은 샌델에게 정의에 대한 추상적 사고 실험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가난과 질병의 폐해를 똑똑히 보아온 센에게 그런 사변적 질문은, 그저 사치로 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란 무엇인가’란 질문에게 너무 혹독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 샌델과 센의 차이는 어쩌면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서려는 정치철학자와 현실에 한 걸음 더 들어가려는 후생경제학자의 차이일 테니까. 또 ‘~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숨가쁜 일상 속에서 가끔 고개 들어 현재 좌표를 확인해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이 얘길 하는 건 4ㆍ15 총선 여당의 압승 이후 이제 다시 한번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때라서다.

야당이 패배해서일까. 총선 이후 각 신문엔 ‘보수의 미래’를 걱정하는 기사들이 제법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자유와 시장이란 보수의 정체성은 지켜야 한다’는 논리들을 보고 그만 하품이 났다. 그들의 자유와 시장은 뭔가 내용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상대를 ‘종북좌파’로 내몰기 위한 수단이다.

그 사실이 탄로나면서 ‘보수는 비합리적인 어거지 꼴통’이란 공식이 만들어졌는데도 그걸 버리지 않겠다니. 당장 김무성 의원이 비판한 극우 유튜브를 보라. 온통 자유와 시장의 향연이다. 보수도 기본소득, 기후변화, 성소수자 문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김세연 의원의 주장 정도만 눈에 띈다.

동시에 개인적으론 ‘보수의 미래’가 별로 걱정되질 않는다. 이번 4ㆍ15 총선 역시 당이, 인물이 제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계급투표의 강남’ ‘지역투표의 영남’, 이 두 개의 동맹만 있다면 어쨌든 기본 100석은 차지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줬다.

‘180석씩이나 가진 오만한 여당’이라 세차게 때려대면 분위기가 또 어떻게 바뀔 지 모른다. 저쪽 편에선 ‘180석이나 가졌지만 무능한 여당’이라고, ‘몰아줘도 변한 게 없다’고 때려댈 이들도 상시 대기 중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진보란 무엇인가. 센의 목소리를 빌자면,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저러하지 않으면 진보가 아니다’라는 식의 본질적 규정을 가지고 사고실험을 하는 건 실제적 진보에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구체적인 작은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일에 집중하자.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만 집착하면, 남는 거라곤 그저 지상의 이 모든 거악을 일거에 소탕하실 ‘진보 메시아의 강림’을 기원하는 일 밖에 없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종교다.

느리고 갑갑하고 짜증나고 화나더라도, 당장 눈 앞에 똑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도록 하자. 그러다 어느 날 되돌아보면 진보해있지 않을까. 5ㆍ18 40주년 아침, 그래도 우리는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역사적 진보란 천장을 뚫는 게 아니라 바닥을 높이는 작업일지 모른다.

조태성 문화부장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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