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점화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절연’ 선언까지 나왔다. 중국도 뒤질세라 ‘강대강’ 대응을 천명했다. 미중 패권경쟁이 무역, 군사 등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미국-소련 냉전에 버금가는 ‘코로나 냉전’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미 폭스 비즈니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 대응과 관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며 “모든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중 무역적자) 5,000억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폭스뉴스는 “지금까지 트럼프의 대중 발언 중 수위가 가장 높다”고 평했다.
11월 재선 도전을 앞두고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난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 수위를 높이며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30일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증거를 봤다”면서 ‘중국 책임론’에 불을 지피더니 3일엔 “중국이 미국 상품구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무역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문제는 그의 즉흥적 발언이 말폭탄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 1월 1단계 합의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미중 무역전쟁이 당장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전날 미 기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회사가 만든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1년 연장했다. 다분히 중국 화웨이를 겨냥한 조치였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반도체 자급 계획은 이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는 15일 “미 애리조나주(州)에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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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긴장 수위도 덩달아 고조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가 주무대다. 미 국방부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유행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불법적인 영유권을 주장하며 이웃 국가를 압박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늘리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CNN방송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미군은 남중국해에 함정과 전략폭격기를 띄워 중국에 공개 경고를 보냈고, 중국도 KJ-500 조기경보기와 KQ-200 대참초계기를 남중국해에 배치하며 맞불을 놨다.
미ㆍ중 갈등의 불똥은 국제기구로까지 튀었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이날 돌연 중도 사퇴 의사를 밝힌 것도 미국의 견제 탓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무역분쟁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는 WTO 상소기구는 미국이 위원 추가 선임을 반대하면서 6개월째 멈춰선 상태다. 트럼프는 아제베두 총장의 사임 소식에 “나는 괜찮다. WTO는 끔찍하다. 중국을 개발도상국으로 대우해 미국이 못 얻는 혜택을 많이 받게 했다”며 노골적으로 환영(?) 입장을 밝혔다. 중국 편향을 이유로 자금 지원을 중단한 세계보건기구(WHO)에 관해서도 “내주 중 추가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40년간의 국제협력 관계가 끝나고 새로운 냉전 대결구도, ‘냉전 1.5’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양국 결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5일 “트럼프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관영 환구시보도 “코로나19 방역 실패의 책임을 중국에 전가하는 상황은 미 대선에도 직접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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