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지급과 ‘한국판 뉴딜’에 고용보험의 단계적 확대와 그린뉴딜이 추가되면서 정부의 코로나19 지원 및 경기부양책이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반응은 썩 호의적이지 않다. 코로나19 위기는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기후변화와 감염병 발생 등 생태위기를 심화시켜 온 이윤과 성장 중심의 경제 체제로부터 보다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체제로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코로나19 이전의 ‘노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의회는 이제까지 무려 2조8,000억달러의 코로나19 예산을 통과시켰는데, 대기업 지원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지원 조건으로 제시된 고용 유지 기준은 느슨하기 짝이 없고 온실가스 등 오염 배출 감축 조건은 포함되지도 못했지만,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 다수조차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나마 버니 샌더스 등 진보 성향 의원 몇몇이 대기업 지원 일변도를 비판하고 나섰으나 실업급여의 확대를 관철시키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그 결과 실업률과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은 벌써 수개월 후의 대량 해고를 예고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앞세워 각종 규제들을 약화시키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화도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미국의 사회운동 진영이 ‘정의로운 코로나19 지원과 경기 부양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민중적 구제책(People’s Bailout)’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기후정의운동 단체 350.org를 주축으로 민중적 구제책의 다섯 가지 원칙에 기초한 ‘정의로운 경기회복(Just Recovery)’ 글로벌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르면 우리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어떠한 평가를 받게 될까?
다섯 가지 원칙의 첫 번째는 모든 이들의 건강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 의료보험을 넘어 공공의료 확대, 상병수당과 유급병가ㆍ휴가, 보건의료 사각지대의 취약계층 지원 확대 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두 번째는 대중들에 대한 지원이 직접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침체 기간 모든 이들에게 생계 지원금이 정기적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강제퇴거 금지, 임대료 감면ㆍ동결과 납부 유예, 주거지원 확대, 나아가 실업부조와 아동보육 등 사회안전망 확충도 긴급히 필요하다.
세 번째는 기업이 아닌 노동자 공동체와 지구의 구제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기업 지원은 임원 상여금ㆍ주식 배당ㆍ주식 환매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경기침체 기간 모든 노동자의 해고가 금지되어야 한다. 탈탄소화 등 환경 개선에 나서지 않는 기업은 지원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재생 가능 에너지와 생태계 복원에 기반한 탈탄소 재생 경제로의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는 새로운 일자리 제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이윤에 우선하고 노동자와 공동체의 권리를 강화함으로써 생태적 전환과 구조적 사회ㆍ경제 불평등의 해소를 동시에 추구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위기의 상황이 인권과 시민적 자유를 침해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볼 때 정부와 여당의 문제는 세부 계획 미비보다는 원칙 자체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재정건전성 논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기업 이윤 창출과 이를 통한 양적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고 그에 저해되는 규제의 완화를 강력히 추진하며, 다만 더 많은 이들을 그러한 성장에 기여하도록 ‘포용’해 내고 기후ㆍ환경 문제도 같은 틀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노멀’과는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린뉴딜이 자칫 그린워싱을 위한 자본과의 딜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정의로운’ 코로나19 지원과 경기 부양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때다.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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