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자급’ 움직임에 가시적 성과가 나왔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미 애리조나주(州)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세계화’ 대신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된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TSMC는 15일 성명을 통해 애리조나에 5나노미터(㎚) 공정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투자 금액은 약 120억달러(약 14조7,000억원)이다. 새 공장은 내년 착공해 착공해 2024년부터 반도체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TSMC 측은 “이번 프로젝트로 미 정부 및 애리조나주와 강력한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됐다”고 환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트위터에 “중국이 최첨단 기술을 장악하고 중요 산업을 통제하려는 시점에서 이번 거래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TSMC가 공장 건설을 위해 미 연방정부나 주정부로부터 재정적 인센티브를 받았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TSMC는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애플과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업체들 및 중국 화웨이 등의 설계에 따른 제품을 위탁생산하고 있다. 현재 주력 공장은 대만에만 있다. TSMC의 미국 현지 공장 설립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급속히 진전됐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앞서 미중 갈등이 격화하자 미국이 첨단제품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 부품을 대만,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반도체 자급’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TSMC를 콕 집어 미국 내 공장 설립을 요구했다. TSMC 입장에서도 미국 진출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에 대(對) 화웨이 수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협상 동력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고위 관료들은 3월 말 화웨이 규제 도입을 추진키로 했지만 상무부는 발표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채 보류하고 있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행정부가 TSMC에 특혜를 줄 경우 미국의 경쟁사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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