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코로나의 메시지는 통합과 공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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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코로나의 메시지는 통합과 공존이다

입력
2020.05.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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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던 취임식에서의 국민통합 선언

현실은 극단의 증오가 일상화한 적대사회

연대 공존만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해법

문재인 대통령이 1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2017.5.10 오대근기자

취임사에 관한한 문재인 대통령은 최고였다. 이전까지는 국정 연설하듯 온갖 분야를 세세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던 모양이다. 뻔하고 장황해서 여의도의 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하객들이 졸음과 싸웠다.

문 대통령은 달랐다. 분야별 국정목표는 간략하게 핵심만 짚었다. 대신 짧은 취임사 대부분을 ‘통합과 공존’ 선언으로 채웠다. 노무현의 비극 이후 절치부심해 온 그에게서 이런 대범한 국정철학을 듣게 될 줄 몰랐다. 좌우를 극단으로 오가던 시계추의 진폭이 비로소 줄고 관용과 소통의 정치문화가 처음으로 싹을 틔우리란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통합은커녕 모든 사안이 진보와 보수, 나아가 이념과도 무관한 내 편, 네 편의 격렬한 싸움으로 치환됐다. 갈등은 자연스럽되 이 정도의 적대와 증오로 뒤덮인 사회는 일찍이 없었다. 보편가치인 평등, 공정, 정의도 서로 다른 의미로 각각의 집단에 갇혔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 지경의 적대사회를 만든, 아니 이리 되도록 방조하거나 최소한 방치한 책임만큼은 다른 업적과 무관하게 차마 용납키 어렵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한 담론이 넘쳐 난다. 대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종말, 폐쇄적 국가주의의 발호, 개인주의와 배타주의의 범람 같은 것들이다. 구체제가 일거에 붕괴하는 마당에 믿을 건 아무 것도 없으니 각자도생의 길밖에 없다는 극단적 비관론까지 횡행한다.

그러나 코로나의 핵심 메시지는 정작 다른 것이다. 눈 밝게 읽었다면 도리어 ‘통합과 연대, 공존’만이 나의 안전과 생존, 세상의 발전을 담보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열린 세상에서 나 혼자로는 별 의미도 없을뿐더러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코로나는 우리 각자의 삶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긴밀하고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주변의 안전과 행복이 나의 안전 행복과 무관치 않다는 각성이다. 철학적 담론을 빌자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성 속에서 의미를 얻는 존재다. 실제로 폐쇄적 신념에서 비롯된 독선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신천지 같은 사례들이 극명하게 입증해 보였다. 방역 성공도 결국은 소통과 공감에 기반한 정치사회적 협동의 결과물이다.

어쨌든 문 정부는 빛나는 방역성과로 국정운영에서 대단한 자신감을 얻었다. 최근 수십 년 어느 정부도 가져보지 못한 성공의 경험이다. 더욱이 역대 최고수준의 지지율과 입법 권력의 장악으로 뭐든 할 수 있는 동력도 얻었다. 그래서 도리어 우려가 크다. 과한 자신감이 자칫 배제와 독선의 질주를 가속화하지 않을까 하는.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 앞에 놓여 있다. 진단과 해법들이 제멋대로, 심지어 모순적으로 엉켜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큰 정부와 규제완화가 그렇고, 국가주의와 개인주의도 그렇다. 뉴딜이든 뭐든 어느 것도 일방적 결정으로 몰아붙일 게 아니라는 뜻이다. 코로나로 잠시 덮였지만 그동안 일방 질주의 결과가 경제쇠락과 고용재난 같은 소주성의 후유증이고, 원전의 딜레마고, 극단의 적대사회화 같은 것이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오직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협의와 설득, 공감을 통해 책임을 나누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개혁이냐 통합이냐’ 따위의 양자택일식 질문은 부질없다. 굳이 답해야 한다면 통합이 우선이다. 취임식에서의 약속대로,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까지 끌어안아 생각을 모으고 선택과 조정을 고심하며 함께 나아가는 길을 가야 한다. 걱정할 것 없다. 압도적 힘을 가진 쪽이 내미는 손은 아름다운 배려가 되고 그 또한 정치적 자산으로 쌓일 것이므로.

이제부터야말로 대통령과 여당은 이념과 당파, 내 편의 이해를 넘어 통합, 연대, 공존의 사회를 만들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게 코로나가 바꿀 미지의 세계를 헤쳐 나갈 가장 유효한 방법이거니와, 훗날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게 평가받을 업적이 될 것이다. (보수야권에도 적용되는 주문임은 물론이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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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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