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고심 끝에 ‘위험하고 불안한 실험’에 한 발짝 더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누그러졌다지만 공인된 백신ㆍ치료제가 없어 2차 확산 우려가 적잖은 상황에서 상징성이 큰 국경 개방을 공식화한 것이다. 경제ㆍ보건 간 최적의 균형을 고민한 결과이겠지만 일단 시장의 반응부터 기대보다는 우려에 가깝다.
EU 집행위원회는 13일(현지시간) 27개 회원국에 “감염 상황이 안정된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이동 제한을 완화하고 인접국가 간 협의를 통해 국경을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역내 자유이동을 재개하자는 권고다. 지난달 중순부터 개별 국가들이 자국 내 봉쇄령을 점진적으로 완화하기 시작했고 일부 국가들 간 국경 개방 논의가 진행돼온 상황에서 EU가 사실상 유럽 대륙 전제가 경제 재개 쪽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것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내 인적ㆍ물적 교류는 상당한 속도로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15일부터 한 달간 국경 검문을 완화한 뒤 국경 봉쇄를 전면 해제키로 한 상태다. 13일부터 오스트리아 북서부와 독일 남동부 간 소규모 국경검문소 3곳이 개방돼 농업인과 통근자의 통행 제한이 풀렸다. 독일은 앞서 2일에 외국인 계절노동자 8만명을 입국시킨 바 있다. 노르웨이와 크로아티아 등도 조만간 주변국에 국경을 개방할 계획이다.
EU가 국경 개방에 속도를 내는 건 일차적으로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는 관광산업 활성화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여행에 생계를 의존하는 많은 유럽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EU 집행위는 코로나19 사태로 관광 관련 일자리 640만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에리카 블리게 벨기에 앤트워프의대 교수는 “스키 여행철 직후인 2월에 유럽 내 확산이 본격화했듯 여름 휴가철 이후 ‘새 유행’이 몰아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감염병 위험을 원천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백신ㆍ치료제가 부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유럽 내 코로나19 발병 초기엔 이탈리아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 등지의 유명 스키장발(發) 집단감염이 상당했다.
EU의 국경 개방 권고는 강제성이 없는데다 역외로부터의 입국은 금지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경기침체 우려를 감안할 때 봉쇄 해제 가속화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일부 봉쇄령 완화 국가들에서 나타난 마스크 착용 및 감염경로 추적 애플리케이션 설치 논란, 해변ㆍ휴양지 내 사회적 거리두기 미준수 급증 등은 2차 확산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우려는 당장 주식시장에서부터 감지됐다.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이날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전날보다 낙폭은 줄었지만 봉쇄 해제 가속화로 인한 2차 팬데믹(대유행) 우려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차장은 경제 재개 쪽으로 사실상 미국보다 한발 더 나아간 유럽의 움직임에 대해 “여전히 위험성이 높은 상태”라고 경고음을 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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