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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범죄 부인하는데 반성했다고 감형한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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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범죄 부인하는데 반성했다고 감형한 재판부

입력
2020.05.15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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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성폭행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가수 정준영이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1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고영권 기자
집단 성폭행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가수 정준영이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1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고영권 기자

집단 성폭행과 불법촬영물 유포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은 가수 정준영, 최종훈에 대해 반성과 합의를 이유로 감형한 항소심 판결은 유감스럽다. 양형 기준에 따른 결정으로 보이지만, n번방 사건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이슈가 된 후에도 판사들이 변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고법 형사 12부(부장 윤종구)는 12일 정준영 등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서 법리 오인, 사실 오인 등 피고인 측 주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준영에 대해 1심보다 1년이 적은 징역 5년, 최종훈에게 1심 형량의 절반인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이유는 각각 진정한 반성, 피해자와의 합의였다. 정준영은 1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공소사실조차 부인해 온 이들에게 재판부의 감형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잘못했다’는 식의 반성이 진정한 반성일 수는 없다. 가해자가 아니라면서 합의금으로 피해 구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소사실 자체는 부인하지만 구체적 상황을 진술”하고, “행위 자체는 반성한다는 취지의 자료는 낸 점을 고려”했다는 판사의 발언은 앞뒤 안 맞는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기계적으로 적용해 온 양형기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는 문장을 판사들은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성범죄에 관한 한 판사들의 인식은 일반 국민과 괴리가 크다. 3월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설문조사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등에 대한 기본 양형으로 가장 많은 판사들(31.6%)이 답변한 것이 징역 3년이었다. 징역 5년 이상, 최고 무기징역의 법정형에 비해 너무 가볍다. 국민 상당수에게 분노를 유발할 정도다. 가벼운 형량뿐 아니라 감형 사유도 문제다. 인터넷에서 매매될 정도로 남용되는 반성문 제출, 피해자 당사자의 의견이 무시되기 쉬운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의 합의는 아예 감경 요인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런 판결을 지켜보는 국민 눈에 판사들은 새로운 법과 양형 기준을 받기 전까지 달라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새로운 기준이 세워지려면 새로운 판결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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