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가 지난 11일 서울대 SK경영관 연구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게기로 장인철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준법 경영을 위한 삼성 지배구조 개선 이슈 등에 관해 대담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보는 시각엔 냉소와 기대가 뒤섞인다. 법원의 감형을 겨냥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있는가 하면, 어쨌든 삼성의 미래를 건 ‘사회적 선언’이 됐다는 점을 중시하는 관점도 있다. 사실 이번 사과는 어떤 식으로든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향한 삼성의 쇄신에 또 한번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오너 체제를 고수해온 국내 대기업 경영에도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경영시스템 연구와 기업 현장의 경영혁신 과정에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이어온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로부터 이번 사과에 대한 평가와 삼성의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들어본다.

-이 부회장의 사과 및 선언은 기업 발전 단계에서 오너 경영 체제 한계에 따른 삼성의 내재적 변화 동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부회장의 4세 경영 포기, 전문 경영 체제 선언을 평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위상을 감안할 때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켜보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특히 굳이 ‘4세 경영’ 포기까지 선언해야 하는 현실은 답답하다.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경영학자로서, 기업 자산과 수익의 부당한 사적(私的) 편취를 막을 장치가 견고하다면, 경영권을 누가 갖느냐는 건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오너의 전횡을 막는 법과 제도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만큼, 누가 경영할지는 기업에 맡겨도 된다고 본다. 그런데 현행 상속제도에선 기업이 존속하고 성장할수록 오너 일가는 경영권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고, 그런 ‘제도적 강제’를 피하려다 보니 삼성 같은 논란이 빚어지고, 급기야 “아이들에게는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어색한 선언까지 나오게 됐다고 본다”

-우리나라 기업 상속제도가 잘못됐다는 건가.

“오너 일가가 반드시 경영을 세습해야 한다는 주장이 무리라면, 오너 일가는 반드시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것도 무리다. 회삿돈을 제 돈처럼 쓸 수 없도록 장치를 강화하되, 그럼에도 오너 일가가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있다면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순리라고 본다. 오너경영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상속ㆍ증여세가 너무 무거운 게 문제다. 중견기업 오너가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면 한 10년 정도 작업을 한다. 지분만 물려주면 세금 내고 어쩌고 하다 보면 경영권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지분과 함께 세금을 감당할 현금을 따로 챙겨줘야 한다. 현금이 어디서 나오겠나. 결국 불법, 편법 써서 회삿돈 우려내야 한다. 그렇다 보니, 10년 동안은 투자도 제대로 안 이루어진다. 그만큼 기업 성장이나 일자리가 정체되는 거다. 기업 상속제도 개선을 얘기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업계에선 상속ㆍ증여세제 개편이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납득될 만한 개편 방안이 있는가.

“기업 지분에 관한 한 아예 상속ㆍ증여세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상속ㆍ증여 시점엔 과세를 유보하고, 나중에 후손들이 지분을 매각할 때 차익에 과세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아버지 때 1억원을 투자했는데 손자 때 지분을 파니 1,000억원이라면 999억원에 대해 세금을 내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상속ㆍ증여세 없앤 나라들 많다. 경영권 관련 주식에 대한 차등의결권 도입도 대안이다. 미국 포드 일가나 스웨덴 발렌베리 일가 등에서 소수 지분으로 실질 경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공익재단 같은 법인을 통해 지배하는 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경묵 교수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모델의 하나로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안 그래도 삼성 오너 경영과 관련해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 사례를 종종 언급한 걸로 알고 있다. 우리 기업에도 유효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오너들이 ‘내 돈은 내 것, 회삿돈도 내 것’으로 여긴다는 부정적 시각이 강하다. 최근까지는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그래서 기업의 부당한 ‘사적 소유’를 막는 쪽으로 법제가 강화돼왔는데, 그러다 보니 이젠 세월이 흐를수록 오너 일가가 자신이 일군 기업에 대한 지분이나 경영권을 모두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에 대한 저항이 국내 오너 경영권 승계 문제의 뿌리다. 발렌베리 그룹 경우는 오너 일가가 보유지분과 개인재산 대부분을 공익재단에 기부함으로써 기업 직접 소유에 대한 오너의 강박 관념을 극복했다. 막대한 재산 있다고 밥 다섯 끼 먹을 수 없는 것이고, 만날 세금 피하려고 머리를 싸매느니, 필요한 만큼 재산만 남기고 ‘사회 환원’을 시킨 거다. 그 결과 발렌베리 일가가 공익재단에 기부한 지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배당금은 80% 이상 교육과 연구개발(R&D) 등 공익부문에 투자되고, 나머지 20%도 재단이 지분을 보유한 관계사 등에 대한 재투자로 쓰인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부자가 받은 공식 배당금만 총액이 6,174억원에 이른다. 발렌베리 일가처럼 한다면 1년에 6,000억원 이상의 배당소득을 포기하라는 건데, 그걸 할 수 있겠나.

“발렌베리 일가가 지분을 공익재단에 기부함으로써 기업 소유권을 포기한 대신, 스웨덴 사회는 공익재단을 통한 오너 일가의 실질적 경영권 승계를 보장했다. 오너 일가가 공익재단 이사회를 장악하고, 공익재단이 보유지분을 통해 그룹 회사나 네트워크 기업의 이사회를 지배토록 하는 방식이다. 그 경우 발렌베리 일가는 주요 기업 임원의 임면이나 인수합병(M&A) 같은 중요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재단 이사회 의장이나 이사, 주요 기업 이사로서 배당 대신 일정 수준의 정기급여를 받게 된다”

-발렌베리 그룹을 좋은 모델로 제시하는 이유는.

“삼성뿐 아니라 세계 어떤 기업의 오너 일가라도 자신이 일군 기업에서 궁극적으로 축출되는 걸 바라진 않을 거다. 그건 자연스러운 거다. 그렇다고 현행 법제를 준수해 경영권 상속을 포기하면 결국 기업은 국민연금이 지배하는 준 국영기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발렌베리 그룹은 그런 면에서 오너 일가가 부당하게 기업 자산을 편취하는 걸 막고, 지분 배당을 공익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경영권 승계를 허용하는 사회적 절충점을 찾은 모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렌베리 그룹처럼 하기 어려운 이유는 뭔가.

“설사 삼성 오너 일가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법제가 미비하다. 예컨대 공익재단에 기분을 기부해도 5%는 비과세지만 나머지는 과세 대상이라 점차 재단 보유 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당의 의지대로라면 공익재단 지분의 의결권조차 앞으로 더욱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발렌베리 재단이 소수지분으로도 기업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인 차등의결권 같은 장치도 없다. 따라서 삼성 오너 일가가 회사 지분을 공익재단에 넘기는 결단을 하려면, 관련 제도도 합리적 수준으로 바뀔 필요가 크다. 그런 게 사회적 타협 아닐까 한다”

-오너가 경영하는 소유경영 체제와 전문가에 의한 전문경영 체제 중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어떤 게 좋은가.

“창업 단계에서는 오너 경영 체제가 될 수밖에 없고, 기업초기엔 결국 오너의 기업가 정신이 회사 성장을 이끄는 힘이다. 따라서 경영 체제 문제는 기업이 충분히 성장했을 때의 문제일 것이다.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에 어떤 체제가 좋다고는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전문경영 체제가 절대선이 아닌 건 분명하다. 실증연구 결과를 토대로 말씀 드리면 우리나라에서는 오너 경영체제의 성과가 아직은 전문경영 체제로 돌아선 경우보다 질이나 양적으로 훨씬 낫다는 점만 확인해두고 싶다. 또한 주요 그룹들의 경우, 이제는 오너 경영 체제라고 해도 오너가 경영 전반을 만기친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오너는 군림하되, 개별기업 경영은 이미 전문경영 체제라고 봐야 한다”

-이번 사과에서 언급된 ‘무노조 경영’ 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삼성 근로자에 대한 전반적 처우가 노조 있는 다른 기업에 비해 열악한가. 오히려 훨씬 좋다고 본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사실상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근로자들에게 가장 좋은 처우를 앞서서 해주자는 식이었다고 본다. 비용이 더 들어도 그렇게 한 건 기업 공동체의 총화라든지, 효율적 경영을 위한 포석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3법 어기고, 불법행위가 빚어져 경영 스트레스가 오히려 커진 상황이 됐다. 이젠 회사와 노조가 공존하는 새로운 기업문화를 일궈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고 본다”

-이 부회장은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강조했다. 삼성과 시민사회의 소통이란 건 어떤 뜻으로 봐야 하나.

“어떤 기업이든 사회공동체에서 신뢰와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시민사회’라는 용어는 왠지 정치적 뉘앙스가 강해 생뚱맞다. 아마 준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정도의 선언적 의미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은 성장하고 발전해서 더 많은 일자리 만들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삼성은 현재 진퇴의 중대한 분수령에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지금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질 토대를 강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때라고 본다”

인터뷰=장인철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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