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페미니즘이 길을 묻다] <5·끝> 재난에 더 취약한 여성노동자들
간호사ㆍ간병인ㆍ돌봄교사… 필수노동 위험 가중 ‘최전선 전사’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명제 앞에서 페미니즘도 예외가 아니다. 구로콜센터 집단감염이 보여줬듯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방역에 취약한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드러났고, 젠더 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실상이 텔레그램 ‘n번방’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맞이한 위기와 전환의 시기를 페미니즘 시각에서 살펴보기 위해 다섯 명의 국내 대표적인 페미니즘 연구자들의 글을 연재한다.
3월 13일 AFP 통신은 이마와 코, 뺨에 반창고를 붙인 한국 간호사들의 사진을 보도했다. 오랜 시간 방호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하느라 피부가 벗겨지고 물집이 생긴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군데군데 반창고를 붙인 그들의 얼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선 이들이 누구인가를 생생히 드러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사진은 한국의 성공적 방역의 원인을 공중보건체계나 정치적 리더십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줬다. 대규모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대에 여성 노동자들은 어디 있으며, 팬데믹 시대 이후 그들의 노동과 삶의 조건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묻고자 한다.
◇코로나19 시대 여성 노동자는 어디에
한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의 TV와 신문, 인터넷 뉴스가 쏟아내는 수많은 사진 속에서 여성들은 간호사로, 의사로, 휴교로 집에 갇힌 아이들을 돌보는 재택근무 노동자로 등장한다. 의료노동자들은 기본적인 휴식과 수면시간을 줄이며 인력과 개인보호장비(PPE)의 부족 속에서 신종 코로나와 맞서고 있다. 워킹맘들은 집이든 직장이든 넘치는 일과 늘어난 돌봄을 감당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
우리의 눈은 그들을 ‘여성 노동자’로 구분해 보지 않지만, 사진 속의 그들은 ‘여성노동자’이기에 수행하는 일들을 한다. 그들은 ‘여성 노동자’라고 따로 호명되진 않지만, 그들이 짊어진 짐은 ‘노동자’라는 이름에만 담길 수 없는 또 다른 부피를 지닌다. 여성들의 어깨에 걸린 짐의 무게는 코로나19 이전 불평등한 노동조건과 코로나19 시대 위험의 두께가 겹쳐진 것이다.
팬데믹 사회 여성 노동자는 위험과 싸우는 전투의 최전선에 서 있다. 대규모 감염병에 맞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의료인들, 요양원과 병원 등 집단거주시설의 돌봄 노동자들, 긴급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교사들, 음식을 만들고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수많은 식당의 조리사와 서빙 노동자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늘어나는 상담 업무를 수행하는 콜센터 노동자들. 모두 우리의 안전과 일상생활이 지속되는 데 필수적인 노동자들이다. 로버트 라이시 미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들은 팬데믹 시대에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이런 필수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여성이 많은 것 또한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이런 최전선의 여성 노동자들은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이나 에볼라에 감염된 여성 간호사들의 사례는 유엔이나 국제여성단체들을 통해 알려져 왔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 역시 여성노동자의 상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또 폭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여성 노동자의 조건을 규정하는 요인은 생물학적이기보다 사회학적이다. 그들이 여성이란 사실보다 그들이 놓인 ‘사회적 위치’가 문제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의료보건 분야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전통적 성역할로 인해 신종 코로나에 더 자주 더 강력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 신종 코로나 확진 간호사 9만명 달해
첫째, 전 세계적으로 보건의료 인력의 75% 이상을 구성하는 여성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상황이다. 특히 간호사와 간병인은 환자와 밀접하게 자주 접촉한다는 점에서 신종 코로나의 위험에 가장 가까이 노출돼 있다. 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스 확산 당시 감염자 8,000여 명 중 절반이 여성이며 그중 21%가 의료보건 노동자였다. 한국에서도 보건의료 인력의 대다수가 여성이며, 간호사와 간병인처럼 더 오래 더 자주 환자를 대하는 업무는 대부분 여성들이 수행한다. 이달 초 국제간호사협의회(ICN)는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가 9만명에 이르며 26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둘째, 여성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낮은 지위다. 지난 3월 중순 경북 청도군 대남병원 정신병동에서 간병노동자가 환자에게 감염돼 생명을 잃었다. 당시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간병노동자들에게 마스크 지급을 의무화하라”고 주장했다. 대학병원에서조차 간병노동자들은 신종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병원으로부터 마스크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간병노동자들은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병원 측의 주장이 그 이유였다. 간병노동자들은 노동자의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환자와 생활을 같이 하는 일상에서 24시간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기본적인 보호와 안전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시대 최전선에 있는 것은 의료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질병 감염 위험 외에, 실직이나 빈곤 같은 사회경제적 위험과의 싸움에서도 여성들은 최전선에 있다. 여기서도 여성들이 수행해 온 일의 특성이 작용한다. 소위 ‘대인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대인 서비스 노동은 상품이나 서비스 판매의 최전선에서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고객의 욕구를 읽고 충족시키는 일이다. 관행상 여성들은 의사소통에 능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섬세하다는 이유로 이런 업무에 배치돼 왔다. 직업 분류에서는 ‘서비스직’과 ‘판매직’이 여기에 속하지만, 다른 직종에서도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업무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업무에는 여성들이 주로 배치된다. 재가 및 시설의 요양노동자, 여행안내원, 식당과 카페의 서빙 노동자, 다양한 유형의 판매직, 콜센터 텔레마케터, 민원 처리 업무나 고객 담당 부서의 사무직원도 이에 속한다.
◇코로나로 남성보다 22만명 더 실직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의 확산으로 이중적인 위험에 쉽게 처한다. 먼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만큼 감염의 위험도 커진다. 또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경제적 봉쇄나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과정에서 이들의 일자리는 가장 먼저 사라질 수 있다. 통계청의 올해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월 한 달 동안 급증한 일시휴직자 61만 8,000명 중 여성은 62.8%(38만 8,000명)에 달했다. 주로 교육서비스업(20만명), 도·소매업(4만명), 숙박음식업(2만9,000명)에서 일시휴직자가 발생했다. 그 결과 지난 3월 기준 일시휴직자는 160만7,000명에 이르며, 남성이 55만9,000명, 여성이 104만 8,000명으로 전년 동월대비 각각 293.2%, 411.9% 늘었다. 고용률 사정 역시 비슷하다. 올해 3월 현재 여성 고용률은 전년 동월대비 1.0% 하락했고(남성은 0.8%), 실업률은 같은 시기 0.3% 높아져 오히려 0.2% 감소한 남성 실업률과 대조적이다. 여성취업자는 한 달 새 17만 5,000명이 줄었다(남성은 5만 3,000명). 이 추세는 4월까지 이어져,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은 올해 2~4월 사이 신종 코로나 위기로 여성 취업자가 62만명, 남성 취업자가 40만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신종 코로나’ 사태는 여성들의 일자리에 훨씬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위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여성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논의를 빌어 세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여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는 더 이상 주변적인 존재가 아니다. 팬데믹 시대의 최전선에서 싸운 사람들이다. 둘째, 이런 사실의 인정을 토대로 여성 노동자의 경제적 조건을 개선해 가야 한다. 성별로 직무가 구분되는 차별적 관행을 폐지하고 성별임금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돌봄노동처럼 여성이 집중된 직종의 임금수준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 셋째,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가 국가 정책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신종 코로나 대응책으로 그동안 진행된 정부의 논의과정에서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때문에 휴직자와 실직자 중 여성이 훨씬 더 많지만 사회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는 분명 국가에 의한 체계적 차별이고 불평등의 묵인이다. 신종 코로나 이후 한국은 어떤 사회로 변화할 것인가. 성평등한 사회를 바란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진지하고 솔직한 토론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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