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트럼프 타워’ 조롱했던 아웃사이더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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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트럼프 타워’ 조롱했던 아웃사이더 건축가

입력
2020.05.18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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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축가 겸 비평가 마이클 소킨

마이클 소킨은 어떤 건물과 공간을 설계하고 지었는지보다 '어떤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는지를 살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건축가 겸 비평가다. 그는 모든 건축은 공동체의 삶에 기여해야 하며, 도시는 부동산 소유주 개개인의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라는 원칙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건축행위는 그래서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등에처럼 여겼지만, 다수는 그를 건축 윤리의 북극성처럼 우러렀다. sorkinstudio.com

우아한 시체(exquisite corpse)’는 1920년대 유럽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유행시킨 일종의 연상 놀이를 일컫는 말이다. 아무 단어나 적은 종이를 보이지 않게 접은 뒤 옆 사람에게 전달해 다른 단어를 적게 하는 방식으로 아무 문장을 만들어 ‘시(詩)’를 짓는 놀이. 그렇게 처음 만들어진 문장- “우아한 시체가 새 포도주를 마시리라(불어로 Le cadavre exquis boira le vin nouveau)”-에서 따온 ‘우아한 시체’ 놀이는 전후 문학 회화 등 예술계 전반의 그럴싸한 실험이자 초현실주의 사조의 한 상징으로 정착해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등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건축가 겸 비평가 마이클 소킨이 1991년 출간한 건축 비평서 제목을 ‘우아한 시체’라 단 까닭은, 당대 건축(문화)을 비판하려는 의도였다. 공유의 도시 공간을 소수의 부자와 행정가, 건축가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백지처럼 놀이터처럼 사유하고 망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도시를 “구석구석 활기 없고 형식화된 허세만 남은 부자의 황무지로 전락” (‘정의로운 도시’ 조순익 옮김, 북스힐)시키는 이들의 건축을, 예컨대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를, 메디슨가의 ‘AT&T 빌딩’을 “유아론적 광란”이라 비판했다.

“창문도 하나 없는 후미진 사무실에서 모니터 화면을 마주보고 일해야 하는 여성에게, 빌딩 옥상이 토스카나 양식이든 해체주의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책 ‘우아한 시체’, WP 재인용)

소킨은 그렇게, 도시 공간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고발했고, 마땅히 어떻게 지켜지고 개발돼야 하는지 대변했다. 당연히 그는 건축주(자본가)및 행정가에겐 환대 받지 못한 아웃사이더 건축가였고, 당대 포스트모더니즘 스타 건축가들에겐 ‘등에(gadfly)’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상명하달식 도시계획(Planning)이 아닌 상향식 시민 참여형 도시개발(Urbanism)을 지지하는 이들에겐 건축 윤리의 나침반이자 ‘북극성 같은 존재’(architectmagazine.com)였다. 마이클 소킨이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에 감염돼 숨졌다. 향년 71세.

마이클 데이비드 소킨(Michael David Sorkin, 1948.8.2~ 2020.3.26)은 워싱턴D.C에서 태어나 버지니아 페어팩스(Fairfax)의 홀린힐스(Hollin Hills)라는 곳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미 해군 선박 건조 파트에서 일한 금속공학자였고, 어머니는 사회활동가였다. 홀린힐스는 저명 건축가 찰스 굿맨이 설계한 고급전원주택단지로, 모더니즘과 전후 세대의 자연주의적 이상을 조화시켜 미국건축가협회의 상까지 받은 공간이었다. 그 유년의 공간이 소킨에겐 건축적 가치의 거푸집이었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아버지의 모형 배가 조형 미학의 원형이었다. 만 13세의 조숙한 소년 소킨이 어머니에게 청했던 생일 선물이 문화주의 도시학자 루이스 멈포드의 고전 ‘역사 속의 도시(The City in History)’였다.(citeseerx.ist.psu.edu)

그는 시카고대(69년)를 거쳐 MIT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그 사이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 석사(71년)를 받았다. 당대 모더니즘 건축이 따분했던지 그는 MIT 석사 과정을 중퇴하고 한동안 연극에 눈을 팔기도 했다. 공학석사 학위를 받은 건 1984년이었다. 미국 건축이 모더니즘 특유의 성냥갑 같은 실용적 외형을 벗어나 고전 양식의 절충과 치장을 경쟁적으로 시도하던 이른바 ‘신조형’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본격화한 게 그 무렵이었다.

레이거노믹스, 즉 레이건 행정부의 탈규제ㆍ신자유주의가 활개친 것도 그 시기였다. 뉴욕 스카이라인도 빠르게 바뀌어갔다. 83년 트럼프타워가 완공됐고, 포스트모던 건축의 상징처럼 불리는 필립 존슨(1906~2005)의 ‘550 메디슨 애비뉴(옛 AT&T빌딩)’이 84년 섰다. 소킨이 대안적 문화비평을 표방하며 55년 창간한 뉴욕의 인기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에 건축 비평을 연재한 것도 80년대였다. 그의 문장은, 유일한 번역서 ‘정의로운 도시’의 서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위트와 독설로 신랄하면서도 유려했다. 그는 빼어난 문장가였다.

그의 과녁은, 레이건 정부와 뉴욕 도시ㆍ건축행정가들, 대스승뻘인 당대의 건축가들과 아부 일색의 비평가들, 한 마디로 전방위적이었다. 건축가 데르 스커트(Der Scutt)가 설계한 ‘트럼프 타워’를 그는 “2류대학의 D학점짜리 작품”이라고 조롱했고, 존슨의 “치펀데일 장식장 같은” AT&T 빌딩을 두고는 “시그램 빌딩(미스 반 데어 로에의 모더니즘 건축)에 귀(장식)를 단 흉물”이라고 비판했다. 필립 존슨이 나치에 부역한 건축가라는, 아는 이들도 ‘감히’ 발설하지 못하던 사실을 유머 잡지 ‘스파이(Spy)’에 대놓고 폭로한 것도 그였다. 80년대 뉴욕 주의 ‘타임스 스퀘어’ 재개발 자문위원회에 선정됐다가 존슨이 ‘소킨과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반발하는 바람에 패널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고, 90년대 말 모교인 시카고대의 캠퍼스 마스트플랜을 맡았다가 “제 돈으로 짓는 양 돈키호테나 카미카제 식으로” 밑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3년 만에 해고당한 일도 있었다. 미국 퇴임 대통령들이 관례처럼 짓는 ‘기념도서관’의 탈(脫)공공성을 비판하며, 오바마에겐 정치적 탯줄을 묻은 시카고의 우범ㆍ소외지역 우들론에 대규모 도서관과 기록물 보관소를 지어 “소득 및 기술 분배의 최하부에 위치한 이들”을 배려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더 네이션’ 칼럼, 위 책) 오바마 대통령 기념센터는 하지만 시카고 남부의 오아시스라 불리는 미시간호반의 국립사적지 잭슨파크에 자리를 잡았고, 오바마의 열성 지지자였던 소킨은 누구보다 맹렬히 그 선택을 비판했다.

건축비평으로 이름을 날리던 뉴욕타임스 기자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 1950~)를 두고는 “자신을 일류로 만들어준 일류 건축가 무리들에게 맹종하는” 여피 미학의 예찬자라고 비판했다. 골드버거가 소킨을 향해 “(이란 혁명 원리주의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지닌 종교적 관용 수준의 통찰밖에 없는 비평”이라고 반격하자 소킨은 그 문장을 ‘우아한 시체’의 초판 뒤표지에 자랑처럼 싣기도 했다. 훗날 둘은 화해했다. 골드버그는 소킨을 애도하며 “진정성(earnestness)과 잔인성(cruelty)의 드문 조화를 이루어낸, 좋은 의미에서 미친 지식인이었다”고 말했다. 훗날 소킨은 “레이건 시대의 문화는 나로 하여금 쉼 없이 총을 장전하게 했다. 조금도 후회 없다”고 말했다. 건축잡지 ‘아키텍추럴 레코드’의 편집장 캐슬린 맥귀건(Cathleen McGuigan)은 “소킨의 비평에는 언제나 현상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며 그를 ‘척탄병(bomb thrower)’이라 불렀다.

소킨은 건축주 및 건축가의 탐욕과 과시욕에 도시의 공유 공간들이 잠식당하고 황폐해지는 현상, 현실을 비평 등을 통해 줄기차게 비판했다. 거대 도시 뉴욕도 현재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공원 광장 등 공유공간을 확장하고 최대한 자족적인 환경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2014년의 '뉴욕 시티(영속)주(New York City(Steady) State) 플랜' 개념도. terreform.org

소킨에게 건축과 도시 디자인은, 시민의 삶과 태도에 영향을 주고 미래를 꿈꾸게 하며, 불평등 같은 잘못된 사회 현실을 개선하고, 사회 정의와 권력의 현재를 반영하고 미래의 좌표를 제시하는, 정치적 행위였다. 그래서 건축의 궁극적 지향은 “더 나은 공동체의 삶”이어야 했다. 요컨대 광장과 공원 녹지 등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건축이라는 미시적 차원과 도시계획의 거시적 차원에서 조화롭게, 최대한 평등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거였다. 더 나아가서는 환경ㆍ식량ㆍ에너지를 최대한 자족ㆍ자립할 수 있는 단위 공간 도시들의 연대를 추구했다. 그 예로 그는 뉴욕의 빌딩 외벽과 도로 공간을 대폭 녹지화해 식량을 자급하고, 저속의 ‘탄소 제로’ 트램 노선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뉴욕시티 (영속)플랜(New York City(Steady) State Plan, 2014)’을 제안했고, 더 앞서 94년에는 애리조나 주 유마(Yuma)라는 지역을 모델로 콜로라도 강 수력댐에 기반한 소규모 탈산업- 탈자동차 자족도시 플랜(Weed)을 선뵈기도 했다. 2014년 에세이에서 그는 “세계인이 미국 수준의 소비 생활을 누릴 경우 지구는 현재 인구의 1/3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고, 2011년 에세이(위 책)에서는 도로 절반을 주차 공간으로 묵히는 게 과연 합당한지 묻고 그 공간을 주민들의 놀이ㆍ텃밭 공간으로 활용하는 대신 시속 20~25km의 저속 공공 트램을 갖추자며 “(그 속도는) 현재 맨해튼 교통의 평균 속도와 비슷하다”고 썼다.

뉴욕시 주택국이 2019년 발주한 도시 내 시 소유의 23개 소규모 필지의 집합주택 설계 공모전에서는 5편의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36개국 444개 팀이 경합한 그 공모전에 소킨 스튜디오는 베란다를 녹지화한 계단식 건물과 모서리까지 창을 열어 채광과 조망권을 살린 설계로 주목 받았다.

90년대 말 이스라엘에서 열린 국제건축컨퍼런스에 초대된 소킨은 예루살렘의 평화적 이용을 논의하는 자리에 정작 그 공간의 주체인 팔레스타인 건축가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분노, 독자적인 포럼을 개최해 그 결과를 ‘The Next Jerusalem(2002)’이란 책으로 엮었고, 3년 뒤에는 요르단 서안 이스라엘 정착촌 분리장벽을 통렬히 비판한 책 ‘Against the Wall: Barrier to Peace(2005)’도 엮었다. 그에게 이스라엘은 건축이 정치이며 권력이 어떻게 공간을 조직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장벽은) 사회적ㆍ지적 구조물”이며 “물리적 고립을 넘어 수많은 다른 공간적 행위들, 통행 통제와 군사기지화, 지상ㆍ공중의 분리 등과 다층적으로 결합된 폭력의 상징”(##8)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축가라면 누구나, “누구를 위한 건축이고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건축인지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인기에 주목한 핀란드 헬싱키가 2015년 구겐하임 새 분관 설립을 추진하며 국제 건축설계 공모전을 벌였다. 건축비 외에 헬싱키 시가 구겐하임 미술관에 지불해야 할 라이선스 비용만 3,000만 달러였다. 소킨은 도시이론가 작가 환경운동가 정치인 등을 결집해 ‘Next Helsinki’라는 조직을 결성, 헬싱키 구겐하임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구겐하임이 아니라 헬싱키라는 도시 자체가 브랜드다”라고 주장했다. “다국적 문화 브랜드로의 동질화에 대한 분노와, 고유한 공간과 독자적 형식ㆍ문화를 지닌 헬싱키에 대한 사랑이 우리 프로젝트의 동력이다.”(qz.com) 헬싱키 시는 그 계획을 백지화했다.

뉴욕의 자투리 공유지들(왼쪽)을 활용하기 위해 2019년 뉴욕시가 공모한 공동주택 설계전에 소킨 스튜디오가 출품한 개념도(오른쪽).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서 녹지와 채광을 중시한 그의 작품은 440여 팀과 경합해 최종심에 올랐다. terreform.org

9ㆍ11의 상흔이 남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부지 재개발 설계 공청회에서 소킨은 말리는 이들에게 험한 말까지 퍼부으며 맨해튼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빗장공동체(gated community)로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하며 “물리적 자유를 한껏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가장 위대한” 공간으로 비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자리에는 수직의 추모 폭포와 추모관, 박물관, 비상하는 새의 날개 혹은 눈(eye)를 형상화한 거대한 순백의 이탈리아 대리석 기념물 ‘오큘러스’를 지붕 삼은 환승역과 명품 쇼핑몰이 들어섰다. 그는 “여기는 진정한 상업의 성당”이라고 쓰면서도 “숨 멎을 듯 아름다운 성취”라는 평가도 덧붙였다.(위 책)

그는 73년 이래 뉴욕서 살며, 영리 건축사무소와 별도로 2005년 비영리 도시계획ㆍ설계 집단 ‘테레폼(Terreform)’을 설립해 운영했다. 그는 작품 대부분이 설계로만 남은 ‘페이퍼 건축가’였지만, 유럽과 미국 여러 대학서 강의ㆍ강연했고, 2000년대 중국 여러 도시 계획 자문을 맡기도 했다. 2000년부터는 뉴욕시티칼리지 교수로 재직했고, 82년 결혼한 영화비평가 조안 콥젝(Joan Copjec).도 브라운대 교수였다. 부부는 자녀 없이 그리니치빌리지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침실 두 칸짜리 서민 ‘임대료 규제’ 아파트에 살다가 말년에야 트라이베카의 “꽤나 우아한 집”으로 이사했다. ‘정의로운 도시’ 서문에 그는 독자들의 용서를 구한 뒤 “30년간 자기자원을 출자한 두 선임교수”라면 “(다행히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저렴한 오늘날의 미국에서) 상위 1%의 부촌을 열망할 수 있”지 않겠냐고 변명처럼 썼다. 2006년 인터뷰에서

그는 돈을 벌어야 하는 건축가와 건축 정의를 대변해야 하는 비평가라는 두 자아 사이에서 평생 ‘영원한 곡예(eternal juggling)’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사를 결심할 때의 마음도 어쩌면 그러했을 것이다. “건축 윤리의 나침반”이라 불리던 그는 자신의 건축적 유산으로 어떤 가치가 남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겸손의 비교급으로 “More kindness. Less evil”이라고 말했다.

말년의 그는 암을 앓았다. 2019년 미국건축가협회 평생공로상 수상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최고 자산을 ‘췌장’이라고, 남은 소망은 “영생”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정말 소망한 것은, 세계의 도시인들이 익명의 거주자(residents)나 원월드 쇼핑몰의 소비자(consumers)가 아니라 공동체적 시민(citizen)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단 한 곳이라도 이루는 거였을 것이다. ‘더 네이션’의 마이크 데이비스가 쓴 소킨 의 짤막한 부고가 성에 안 찼던지, 그 매체 런던 통신원인 작가 D.D 구텐플랜(Guttenplan)은 기사 분량만큼 긴 댓글에 이렇게 썼다. “(소킨의 가장 위대한 공로는 구현되지 못한 그의 설계가 아니라) 어떤 건축물들을 지어지지 않게 막은 데 있다. 저 악명 높은 필립 존슨과 존 버기가 뉴욕타임스를 등에 업고, 타임스 스퀘어를 기업들의 복합상업지구로 탈바꿈시키려던 제안을 주저앉힌 게 대표적인 예”라고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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