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의 시대라고 한다, 라고 칼럼의 운을 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모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나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런 전개 자체가 결국 코로나19 발발 이후의 ‘뉴 노멀’이다. 적어도 이 질환을 대상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일정 기간(내가 의학계 종사자가 아니므로 특정 수치를 언급할 수도 없다) 동안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정도로 불안에 잠식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모두가 여러 사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불안 또한 더 빨리 더 많이 내려놓을 수 있다.
공감대 형성과 불안 감소를 위해 음식 문화는 어떤 변화를 좇아야 할까? ‘세심한 맛’이 마침 80회를 맞이했으니 때도 잘 맞아떨어진다. 매 10회마다 돌아오는 특집 차례이니 이번에는 뉴 노멀 시대의 섬세한 맛을 위한 방안 소개에 할애해 보자.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을 위한 외출 자제 등으로 가정 조리의 빈도가 본의 아니게 잦은 현실이니, 이번 회만큼은 외식의 섬세함을 좇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자는 말이다. 일단 모든 방안의 관건은 위생이라는 명백한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자. 단지 바이러스의 전파 방지가 아니더라도 위생은 일상 전반, 더 나아가 음식과 맛의 세계에서 이제 한층 더 중요한 과업이 되어 버렸다.
◇마스크 착용의 생활화
비말로 인한 전염 방지를 위한 마스크 착용이야 뉴 노멀 시대의 기본 가운데 기본이므로 가볍게 짚고만 넘어가자. 마스크라는 게 어쩔 수 없이 갑갑하고 숨을 쉬기에도 안 쓴 상태보다 훨씬 불편하지만 나보다 타인을 위해서라도 착용한 상태의 삶에 적응하는 게 바람직하다. 만일 내가 감염자일 경우 비말의 전파로 인한 타인의 전염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요식업계 종사자라면 음식과 집기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더더욱 신경을 써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요리할 때 나오는 유증기의 흡입을 막아 주니 사실 마스크 착용은 요리 실무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두자.
◇손의 관리 및 통제
역시 모든 열쇠는 손이 쥐고 있다. 모든 도구와 음식의 존재 앞에 손이 있다. 따라서 손의 위생 관리에 실패하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리고 한식은 그런 부문에서 이미 취약한 상황이다. 장갑을 끼는 등 이미 예전에 비해 훨씬 현대적이고도 위생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않느냐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음식점이 밀집한 푸드코트의 화장실에서는 조리복과 앞치마 차림으로 용변을 보고도 버젓이 손을 안 닦고 나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음식점 종사자는 아니고 그저 외출복으로 조리복과 앞치마를 선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용변을 보고 손을 닦지 않는 건 원래 문제이고 이 시국에는 더더욱 큰 문제이다. 그야말로 가장 손쉬운 개인 위생의 실천에 섬세함을 좀 더 기울일 때이다.
한편 장갑이 손의 위생을 자동적으로 더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인식하자. 빵집 등 손을 써야 하는 요식 업소에서 일회용 장갑을 마치 다회용처럼 앞치마의 주머니에 쑤셔 넣고 벗고 끼기를 되풀이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고깃집에서 쓰이는 목장갑은 어떤가? 흔히 행주나 수세미가 그렇듯 세탁이나 소독을 하면 다회용 안전 도구의 위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유통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그 모든 과정을 마치고 처음 사용하는 순간 모든 조치의 효과는 그야말로 일회용으로 전락해 ‘약발’이 떨어져 버린다. 따라서 손에 밀착되는 라텍스 혹은 니트릴 고무 장갑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만드는 이의 손이 관리의 대상이라면 먹는 이의 손은 통제의 대상이다. 자기 몫의 식기나 음식 외에는 먹는 이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식당의 환경은 통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식문화는 이 부문이 정말 취약하다. 식탁에 아예 딸린 서랍에서 꺼내는 수저나 냅킨, 실효가 의심스러운 소독기의 물컵이나 이미 입을 댄 컵의 테두리와 접촉하는 정수기의 출수 꼭지, 늘 식탁에 방치되어 있는 양념통 등이 불특정 다수의 손(혹은 입)을 무시로 타도록 노출되어 있다. 이제 서랍이나 젓가락통은 없애고 사람 수에 맞춰 포장된 수저를 접객원이 내오는 저 먼 옛날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고, 양념은 종지 등의 개인 식기에 필요한 만큼만 담아내거나 아예 주방에 일임해 완성된 맛의 음식을 받아 들여야 한다.
◇식탁에서 실천하는 거리 두기
일상의 모든 구석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한다면 식탁에서도 당연히 예외는 될 수 없다. 식탁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즉 ‘식탁에서 거리 두기’는 기실 한국 식문화의 가장 큰 약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받아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술잔 돌리기이다. B형 간염은 물론 더 치명적인 A형 간염 또한 술잔 돌리기로 감염이 가능하다고 누차 지적되어 왔지만 악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2018년 5월에는 심지어 청와대 신문고에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불과 여덟 명이 동의하면서 눈에 띄는 움직임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비말로 감염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술잔 돌리기는 이제 ‘삼진 아웃(A, B형 간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한식의 문화에서 마땅히 퇴출되어야 옳다.
술잔 돌리기만 퇴출하면 우리의 식탁이 좀 더 안전해질까? 그럴 리가 없다. 아직 식탁의 거리 두기 자체에 대해서는 살펴보지도 못했다. 한식에서는 밥과 국, 더 나아가 찌개 정도를 뺀 나머지, 특히 반찬류를 종류별로 각각 한 그릇에 담아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다. 이때 젓가락이 각자의 입과 반찬 사이를 왕복하므로 역시 안전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한식은 식탁, 더 나아가 반찬의 개인 거리 확보를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일단 반찬의 가짓수부터 대폭 줄여야 한다.
나눠 먹는다는 전제 아래 식탁에 ‘까는(이보다 더 적절한 동사가 없다)’ 반찬의 가짓수를 전부 유지하는 것은 식탁 면적의 한계만 고려하더라도 무리이니 객단가까지는 힘들여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고 반찬의 가짓수를 대폭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밥과 국물 음식에 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 한 가지, 김치와 밑반찬 한 가지만 놓아도 1인당 5점이며 4인이면 20점의 크고 작은 공기와 사발과 접시를 식탁에 올려야 한다. 과연 이런 기본적인 조치로 반찬의 가짓수를 줄여 식탁의 거리 두기를 강화 및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우리의 먹는 문화 자체를 강제로 뒤집어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어 모든 반찬을 없애 버린다거나, 아니면 비빔밥처럼 밥과 반찬을 동시에 먹을 있는 일품요리화시켜 버릴 수도 없다. 설사 그런 변화까지 필요하더라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를 구상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고려해 볼 수 있는, 그나마 현실적인 절충안이 반찬의 주문 식단제이다.
물론 주문 식단제는 이미 한 번 실패했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이미 한 번 도입을 시도했다가 흐지부지 사라졌다. 역시 정떨어진다는 국민 정서 탓인데,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한 번 재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아니, 어쩌면 더 본질적인 맛의 문제를 어부지리처럼 해결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지금처럼 음식 외의 좀 더 절실한 이유가 받쳐 줄 때가 적기일 수 있다. 무슨 말인가? 지금까지 반찬의 우연적인 조합을 ‘먹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맛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식문화’라고 여겼던 맹목적인 믿음이나 음식물 쓰레기의 양산 말이다.
과연 주문 식단제는 어떻게 반찬의 개인화에 필요한 가짓수 감소를 이끌어 낼 것이며, 어떤 수단이 필요할까? 일단 반찬의 유료화 자체를 통해 무분별한 소비를 막을 수 있다. 습관적으로 깔아 주기 때문에 본 식사가 나오기 전부터 입에 넣기 시작해 왔던 반찬이 유료화된다고 가정해 보자. 잠깐이라도 주문 전에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과연 내가 이 반찬을 정말 먹고 싶은 걸까? 아니라면 주문하지 않으면 되고, 그럼 식탁에 올라갈 반찬 하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식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한편 주문 식단제의 실현 및 실천은 많은 이들이 혁신이라 여기는 모바일 솔루션이 열쇠를 쥐고 있다. 이미 일정 수준 쓰이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패드와 앱의 조합으로 주문을 받아 결제 및 주문 시스템에 각각 전송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일반적인 ‘주문-계산대의 단말기에서 입력-주방으로 전달’의 주문 시스템에 한 단계만 더하면 가능하다.
끝까지 죽 읽고 난 뒤 의문을 품을 이도 있으리라.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 아닌가? 맞다. 오늘 살펴본 제안 가운데 아주 새롭다고 할 만한 건 없다. 사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런 시기에 강조하고 또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일단 손 씻기만 해도 그렇다. 몰라서 손을 안 씻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귀찮거나, 손을 안 씻는 자신의 선택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할 뿐이다. 그렇다면 손을 씻는 사람은 반대로 자신의 행동이 엄청나게 큰 재난을 막는 조치임을 마음속에 굳게 새겨 가며 그래 왔던 걸까? 코로나 발발 이후에는 그럴 수 있지만 이전까지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사회적 거리 두기’는 어떤가? 클럽처럼 일상의 그것보다 훨씬 더 인구 밀집도가 넓고 신체 접촉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가는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와 그야말로 거리가 멀지만 준수하지 않는 이들이 있고, 결국 현재의 확진자 재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나 하나쯤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일종의 안전막 세우기에서 슬쩍 한 걸음 뒤로 뺀 것이다. 그렇게 아주 작은 구멍이 하나둘씩 뚫리면 큰 구멍이 되고 방역의 안전막에 균열이 갈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아직 많은 것을 모르지만 확산의 방지와 억제 방안에 대해서는 이미 일정 수준 잘 알고 있다. 힘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누구보다 나를 위해 최대한 열심히 실천하자.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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