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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건축가들

입력
2020.05.15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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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남대 병원 관계자들이 감염방지용 안면보호대(face shield)를 자체 제작해 착용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전남대 병원 관계자들이 감염방지용 안면보호대(face shield)를 자체 제작해 착용해보고 있다. 연합뉴스

건축가들은 만드는 걸 좋아하는 부류다. 어릴 때부터 시계나 전자 제품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데 격한 재미를 느끼다가 건축가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는 주변인들도 꽤 있다. 프라모델이나 피규어 등이 놓인 건축사무소도 자주 보인다. 손으로 형태를 만들어보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호모 파베르. 도구적 인간이라는 말이 건축가를 두고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대혼란을 겪는 지금,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건축 쪽도 사정이 어려워졌다. 건축가는 만드는 일에 있어선 전문가 집단이다. 궁리하고 만들어내며 사회적 난제에 참여하는 건축 집단의 이야기를 소개해보려 한다.

우리야 전 국민이 마스크를 충분히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마스크와 보호 장비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의료인들의 안전을 책임질 안면보호대가 문제인데, 이것을 건축가 집단들이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안면보호대는 마스크를 한 얼굴 위에 쓰는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보호 장비를 말한다.

가장 먼저 룩셈부르크의 건축스튜디오인 메타폼(metaform)이 있다. 이들은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안면보호대 설계안을 홈페이지에 올려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게 했다. 투명 비닐을 타원형으로 재단하고 비닐을 머리에 씌우는 지지대를 3D프린터로 만들어서 이 둘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개개인들이 제작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어린이용 안면보호대도 있는데, 크기도 달라지고 머리에 왕관 모양, 토끼 귀 같은 장식도 더해졌다. 집에서 꼼짝 못 하고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아이들이 만들어보면 좋겠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건축가가 될지 누가 아는가?

거장 건축가로 불리는 노먼 포스터의 사무실에서도 안면 보호대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건축모형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CNC 커팅기를 이용하여 30초 내에 투명시트를 절단하며, 조립도 1분 안에 가능하다. 속도가 느린 3D 프린터에 비해 공정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제작설명서를 보니 건축사무소답게 꼼꼼하고 자세하다. 노먼 포스터의 미래지향적 건축물의 설계도면에서 풍기는 향기가 난달까? 큰 작업대에서 직원들이 안면보호대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사진을 보니 이쯤 되면 건축사무소인지 안면보호대 제작공장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코로나 시대의 건축사무소 풍경을 엿보며 가슴이 찡해졌다.

미국 전역의 여러 건축 집단이 안면보호대를 공동 제작하고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빅(BIG), 케이피에프(KPF) 등 세계적인 건축회사가 포진된 뉴욕의 건축사무소들은 안면보호대 부품을 제작하느라 3D 프린터가 엄청나게 돌아가고 있다. 오픈소스용 모델을 기반으로 하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디자인을 수정 개선한다. 이 파일 또한 인터넷에 공유한다. 이에 고무되어 또 다른 건축가들이나 건축학과 학생들, 디자인대학의 랩실, 메이커스 공간, 제품제작 회사 등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무실이나 스튜디오, 공장에서 3D 프린터를 돌리며 생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제작한 안면보호대가 실제 의료진들 얼굴에 씌워진 모습은 감개무량하다. 난세에 들고 일어난 의병과 같은 모습이다.

다행히 우리 건축가들은 안면보호대를 제작하지 않아도 된다. 평소대로 건축 현장을 감리하고, 디자인을 고민하고, 건축주와 이야기를 나눈다. 허가를 위해 구청에 협의를 다니고, 건축재료를 찾아 다닌다.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반장님, 마스크좀 잘 써주세요’라고 점검하는 횟수가 늘었다. 크게 보자면 건축 분야에서 전염병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 기준, 표준 스펙들은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지 살피는 건축 간담회가 열렸다고 한다. 한국의 건축가들에게는 좀 더 먼 미래를 봐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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