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부터 범행” 자백… ‘돈’ 아닌 ‘성적 취향’이 범행 동기
지난 12일 경찰에 구속된 텔레그램 ‘n번방(성착취물 제작ㆍ공유 대화방)’ 첫 개설자 ‘갓갓(대화명)’ 문형욱(24)의 피해자는 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시기도 지금까지 경찰이 확인한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문씨는 경찰이 자신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줄 알고 순순히 출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경찰청은 14일 수사브리핑을 통해 문씨를 조사하던 중 이 같은 자백을 받아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지난 9일 문씨를 소환해 조사하다 12일 구속한 데 이어 13일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씨는 2018년 9월쯤부터 지난 1월까지 텔레그램에 1~8번까지 숫자가 붙은 대화방과 ‘쓰레기방’ 등 12개의 방을 개설한 다음 공범으로 하여금 미성년자 10명을 성폭행하게 하고 3,000여건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케 해 이를 유포했다. 문씨에게는 아동청소년보호법상 음란물 제작, 강간 등 모두 9개의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은 또 지난해 3월부터 텔레그램 n번방에 대한 수사를 통해 지금까지 문씨와 별도로 공범 4명을 붙잡아 3명을 구속(1명 검찰 구속)하고, 유포하거나 소지한 160명을 적발해 3명을 구속했다. n번방 사건과 관련해 경북경찰과 검찰에 구속된 피의자는 모두 7명이다.
“도와주겠다” 접근 개인정보 탈취
문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일탈계’ 등에서 노출이 심한 자신의 사진을 올린 아동ㆍ청소년에게 “(음란물 게시)신고가 되었는데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일탈계는 트위터 등에 노출이 심한 사진이나 동영상 등 일상을 벗어난 게시물을 올리는 계정을 말한다.
해킹프로그램이 숨겨진 메신저를 보내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탈취한 다음 피해자를 협박, 처음에는 신체노출 사진을 요구하다 차츰 수위를 높여가며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텔레그램 방에 유포했다. n번방은 지난해 2월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성폭행과 영상물 제작은 철저하게 공범을 통해 이뤄졌다. 자신이 직접 성폭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SNS 메신저로 공범에게 피해자를 만나도록 한 다음 성폭행하도록 하고 이를 촬영해 자신에게 보내도록 했다. 이렇게 확보한 아동 성착취 사진과 영상을 텔레그램에 유포했다.
순전히 ‘재미’로… 조주빈보다 더한 ‘악마’
돈을 목적으로 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달리 문형욱은 철저하게 재미(성적 취향)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지금까지 밝혀낸 범죄수익은 9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에 불과하다. 경찰 관계자는 “12개의 방 중 맨 처음 개설한 방에 입장료 명목으로 1인당 1만원씩 9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받은 게 전부”라며 “이것도 자신이 직접 사용하면 검거될 것을 우려해 피해자에게 나눠주었다”고 말했다.
또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할 때 직접 하지 않고 제3의 공범으로 하게 한 것도 검거를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나는 안 잡힌다” 자신만만 경찰 출두
문형욱은 자신의 신원을 파악한 경찰로부터 소환통보를 받고 출두할 때까지만 해도 구속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지난달 중순 문씨의 신원을 확인한 다음 9일 소환조사 도중 당일 긴급 체포했다. 혐의사실을 부인하던 문씨는 경찰이 제시한 디지털증거 앞에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 ‘성착취물을 다운 받은 적은 있으나 갓갓이 아니며, 성착취물을 제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증거를 제시하며 추궁하자 범행일체를 자백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증거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방범죄 방지 등을 위해 공개를 거부했다.
2017년 보육기관서 사회복무요원 근무
경찰은 문형욱이 2017년 보육기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사실도 확인됨에 따라 추가범행 여부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구체적 혐의사실이 밝혀진 것은 없지만, “2015년 7월부터 유사범행을 시작했다”는 진술에 비춰 확인되지 않은 범행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김희중(경무관) 경북경찰청 1부장은 “(경찰이)수사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문형욱이 2018년 9월부터 지난 1월까지 10명의 아동ㆍ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것이지만, 동영상 등으로 확인한 피해자만 36명으로 추정되는데다 피해자도 50여명으로 진술하고 있어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피해자 조사 시 가명조서를 사용해 비밀을 유지하고 여성경찰관 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니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한다”며 “성착취물을 유포하거나 구매ㆍ소지한 자들은 경찰 역량을 총동원해 끝까지 추적, 수사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과 협의해 성착취물을 삭제, 차단하고 상담을 주선하는 등 피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안동=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