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을 만나려면 왜 위로 올라가야 할까. 부하직원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할 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심리학적 원리가 작용해서다. 쉽게 접근하기 어렵도록 해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 있다. 로마 황제의 바실리카나 아돌프 히틀러의 집무실이 그랬듯 공간은 권력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지리학을 전공한 작가이자 독일에서 문화유산 안내전문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왜 늘 앉던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지, 기차나 비행기에서 빈 자리도 많은데 왜 예매 좌석에 앉으려고 하는지, 왜 창가자리를 선호하는지, 왜 다른 사람이 빨간불에 길을 건너면 따라 건너는지, 홈파티 손님들은 왜 부엌으로 모여드는지, 지름길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침대를 방에서 가장 먼 곳에 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 50가지의 사례를 통해 공간과 관련한 사람들의 심리를 흥미롭게 읽어 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타인과의 거리’가 초유의 관심사가 됐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거리에 밀접한 영향을 받아 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사적 영역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다.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을 선택하고, 위험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공간은 알아서 피한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햇볕을 쬘 수 있는 창가 자리를 선호하고, 무방비 상태에서의 적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침대를 가장 안전한 곳에 두고, 배고픔에 대비하기 위해 주방에 모여들고, 먼저 길을 건너는 사람을 통해 안전하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야 길을 건넌다. 대부분의 공간적 행위는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에 따른 것이지만 동시에 더불어 살기 위함이다.
공간의 심리학
발터 슈미트 지음ㆍ문항심 옮김
반니발행ㆍ304쪽ㆍ1만5,000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인 ‘집’에 갇히면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것도 공존을 위한 본능이다. “오직 인간만이 고향에서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찾아 이국을 헤맨다. 타향살이는 인간에게 유일하게 내려진 운명이며, 그래서 진정한 이국 앓이는 인간만이 앓을 수 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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