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세무사법ㆍ교원노조법 등 개정 시한 못 박았지만 국회 늑장
與, 20대 국회 종료 전 처리 방침… 불발 땐 무법 사태 혼란 불가피
헌법재판소(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 조항을 수정하는 것은 입법기관인 국회의 의무다. 헌재가 주문한 기한까지 국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의 효력이 정지돼 입법 공백이 발생한다. 이달 29일 20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여야가 방치해 둔 헌법불합치 법이 4개에 달하는 것으로 13일 집계됐다. 국회의 게으름 혹은 무관심 때문에 일종의 ‘무법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세무사법이다. 2018년 4월 헌재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변호사 자격을 얻은 1만8,000여명이 세무사 등록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세무사법 조항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변호사도 세무사 업무를 할 수 있게 하되, 업무 범위를 국회가 결정해 2019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고치라는 취지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세무대리의 핵심 업무인 ‘회계장부 작성’과 ‘성실신고 확인’을 제외한 업무 6개만 변호사에 허용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변호사업계가 “장부작성과 성실신고확인을 빼면 뭘 하란 말이냐”며 반발해 개정안이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그 사이 법적 공백 현실화했다. 세무사 업무를 보려면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기획재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세무사 등록과 관련된 해당 조항이 올해 1월 1일부터 통째로 ‘죽은 법’이 되면서 기재부가 등록을 받을 수 없게 됐고, 지난해 세무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700여명이 개업하지 못하고 있다. 법사위 관계자는 “세무사와 변호사, 또 기재부와 법무부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며 “20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에서 심사할 법안이 150여건에 달해 세무사법에 대한 접점을 좁히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 주변의 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2018년 ‘국회, 각급 법원, 국무총리 공관 인근 100m 이내 집회 금지’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하며, 2019년 12월 31일까지 수정 입법을 주문했다. 2018년 6월부터 관련 개정안이 7건이나 발의됐지만, 올해 3월에야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법의 효력은 올해 1월부터 중지됐고, 검찰은 집시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공소를 취소하고 상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국회에서 “법 효력이 정지돼 국회나 법원, 헌재에서 제약 없이 집회ㆍ시위를 하는 문제가 생겼다”며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교원노조의 설립 근거가 되는 법률 조항도 국회의 직무유기에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2018년 헌재는 초ㆍ중등교원만 교원으로 인정해 대학교수 등의 노조 설립을 금지한 교원노조법 제2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0년 3월 31일까지 입법을 주문했다. 그러나 관련 개정안은 이달 11일에서야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밖에 회사의 노조 운영비 지원을 금지하는 노조법 81조4호도 올해 1월 1일부로 효력이 상실됐다.
민주당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29일 전에 본회의를 한 차례 열어 헌법불합치 법의 개정안을 모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20대 국회 전에 처리되지 못하면 개정안은 자동 폐기되고, 21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다시 발의해야 한다. 입법 공백이 몇 달 더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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