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모범이 됐던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이 성(性)소수자 논란 탓에 시험대에 올랐다고 주요 외신이 전했다. 자발적인 진단 검사와 개인정보 공개 등 시민의식에 기댄 한국의 기존 전략이 혐오 논쟁에 밀려 이번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이 공중보건과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며 이를 ‘새로운 국면’으로 규정했다. 광범위한 검사와 빠른 정보 공유 등 지금까지의 대응 전략에 ‘소수자 혐오’라는 새 변수가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논란은 최근 서울 이태원클럽 등을 돌아다닌 성소수자 남성이 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불거졌다. WSJ는 “문제가 된 클럽 중 대다수가 성소수자들이 주로 찾는 곳이란 점은 한국 보건당국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날 블룸버그통신도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전략이 위협과 마주했다”고 평가했다.
해외 언론은 한국의 오랜 성소수자 혐오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이날 “현재 한국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 혐오증이 커지고 이는 소수자들의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WSJ도 성소수자들이 클럽 방문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자체 만으로도 강제로 성정체성이 공개되는 ‘아우팅’ 위기에 직면했다고 풀이했다. 이어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오명을 뒤집어 쓰는 것을 우려해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이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AP 역시 “연예계에서는 소수 동성애자들이 각광받고 있지만 동성혼은 한국에서 불법이며 유력 정치인이나 기업인 중 커밍아웃을 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부 국내 언론이 자극적인 동성애 이슈를 부각하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한층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WSJ는 “교회와 연관된 한 신문은 이태원 최초 확진자가 ‘게이 클럽’을 방문했다는 내용의 제목을 달았다가 나중에 바꿨다”며 “해당 매체 노조도 원제목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고 전했다. 이 보도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동성애자를 향한 비방이 폭주하고 있다.
이런 비난 여론이 결과적으로 보건 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게 외신의 결론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접촉자 추적 시스템을 갖춘 한국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6일까지 클럽 5곳을 다녀간 5,500명 중 3분의1 이상을 아직 찾지 못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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