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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호 사세요” 묻자 돌아온 말 “××새끼”…경비원 4명 중 1명꼴 갑질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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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호 사세요” 묻자 돌아온 말 “××새끼”…경비원 4명 중 1명꼴 갑질당해

입력
2020.05.14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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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조사 보고서에 드러난 인권침해 실태 

[저작권 한국일보]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마을 입주민들이 경비원 최모(59)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김영훈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마을 입주민들이 경비원 최모(59)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김영훈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 김모(48)씨는 요즘 일터에 나가는 게 무섭다. 입주민한테서 욕 듣는 게 일상 다반사이지만 오늘은 또 무슨 일로 트집 잡힐지 모르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까닭이다. 최근 주민 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일도 남의 일 같지 않다.

열흘 전 쯤에는 일을 그만 둘까도 했다. 당시 김씨는 아파트 입구 차단기 앞에 멈춰선 차량 운전자에게 몇 호에 사는지를 물었다. 입주민들과 직접 부딪힐 일이 없어 선호하는 근무지지만, 하필이면 그날 차량번호 인식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몇 호에 사는지를 물었을 뿐인데, 운전자로부터 돌아온 답을 이랬다. “××새끼가 귀찮게 하네, 빨리 문 열어!” 뿐만 아니다. 한번은 한 입주민이 술에 취해 다른 집을 자신의 집으로 착각,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시비가 일었다. 그런데 양쪽이 갑자기 경비원인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며 쏟아냈다. “똑바로 해! 이 ××야!!” 김씨는 “경비원도 사람인데,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같다”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서울 강북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경비원 사건에 대해 일선 경비원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비 업무 외에 택배 보관,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 관리 등까지 도맡아 하느라, 근무시간(통상 격일 16~18시간) 내내 바삐 몸을 움직이는데, 입주민의 ‘갑질’ 횡포까지 겪다 보면 마음의 상처가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실제 이 같은 현실은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가 작년 말 내놓은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3,388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진 보고서로, 이들이 처한 불안정한 고용 구조와 열악한 근무환경, 갑질 피해 사례 등이 오롯이 담겼다.

[저작권 한국일보]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 김모씨가 5일 3.3㎡(1평)남짓의 경비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형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원 김모씨가 5일 3.3㎡(1평)남짓의 경비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김형준 기자

본보가 13일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경비원 4명 중 1명꼴(24.4%)로 ‘입주민으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경비원 A(70)씨는 “야간순찰 중에 만난 만취한 입주민이 아무 이유 없이 ‘똑바로 해, ××’라며 폭언을 했다”고 진술했고, 경북의 한 아파트 경비원 B(65)씨는 “관리사무소 지시로 누군가 쌓아둔 옷가지를 치웠는데, 주인이 나타나 보상을 요구하며 4개월 동안 새벽마다 경비실 문을 발로 차며 협박했다”고 밝혔다. 대전 아파트 경비원 C(72)씨는 “입주자대표자 측이 폐가구를 몰래 버린 입주민을 찾으라”며 “폐기물 처리비용을 나한테 떠넘겼다”고 말했다.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고 경비업무와 무관한 일로 행패를 부리는 일도 적지 않다. 휴게시간(통상 밤12~새벽 6시)에 만취상태로 현관문을 열어달라거나 경비실에 맡긴 택배를 갖다 달라는 일, 승강기가 고장 난 일을 가지고 인터폰으로 폭언을 하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주차질서 유지 요구에 불응하며 막말과 고성을 지르는 일도 부지기수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면 입주민들은 ‘고용주’라는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소동을 피우거나 횡포를 일삼았다.

안성식 서울시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현행 공동주택관립법에는 경비원에게 경비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처벌규정에 없어 갑질피해를 막는데 한계가 있다”며 “처벌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임득균 공인노무사는 “입주민의 부당한 대우에 대응이 어려운 경비원의 불안한 고용구조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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