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간 유행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케어)에도 제동이 걸렸다.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4개월 가까이 방역에 매달리면서 문재인케어 업무가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당장 건강보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이 올해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척추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건강보험 적용(급여화) 등 올해 계획이 예정대로 시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1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정심은 현재 서면 협의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는 4월까지만 일곱 차례 열려 두경부 MRI 급여화 등 주요 현안을 심의ㆍ의결했다. 건정심 개최는 문재인케어 추진에 필수적 절차다. 의료계와의 협의 등 실무작업은 정부가 진행하더라도 소비자(환자)와 근로자, 의료계, 제약계, 학계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주요 의사결정을 함께 내리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각계 대표가 모일 수 없었다. 건정심은 이달 15일에야 첫 회의를 열기로 했다.
복지부 인력이 절반 가까이 방역에 투입되면서 문재인케어 대표상품인 MRI 급여화 실무작업마저 지연되고 있다. 당장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담당하는 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이 공석이다. 전임 과장은 2월부터 복지부 대변인과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을 겸직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의료계와의 대면회의가 중단된 것도 업무 부담을 키우고 있다. 예비급여과 관계자는 “각종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이전에 사용량이나 빈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데 의료계와 논의가 어려웠다”라면서 “흉부 초음파는 올해 급여화하겠지만 심장 초음파와 척추 MRI는 예정대로 급여화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문재인케어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2020년도 시행계획’에 따라 올해 추진하기로 예정된 정책들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비 항목을 공개하는 대상을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는 정보 공개 방안의 경우, 대한의사협회와의 협의가 중단된 상태다. 마찬가지로 경증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제한하는 방향의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굵직한 현안도 논의가 멈췄다.
국민연금 개혁은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서 추진되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여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신종 코로나까지 유행하면서 복지부 내부에서도 표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는 연금개혁은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대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묶어 다층 노후소득체계를 만드는 등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정책부터 추진해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겠다고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을 포함해 빈곤층 등 취약계층을 돌보는 복지 정책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당장 장애인주치의제도 2단계 시범사업도 시작해야 할 뿐 아니라 온라인 개학하면서 장애아동의 교육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 역시 “실업부조 도입 등 전국민 실업안전망 구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코로나에 가려진 각종 현안에 대한 추진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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