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을 사세요” 메일링 서비스 춘추전국시대…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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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사세요” 메일링 서비스 춘추전국시대…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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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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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중개자 없이 창작자와 구독자가 직접 연결되는 ‘메일링 서비스’가 문화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다양한 개성으로 구독자를 끌어 모으고 있는 ‘일간 이슬아’(왼쪽부터) ‘월간 우롱’ ‘일간 매일마감’ ‘무루레터’의 홍보 포스터들. 그래픽=신동준 기자

넷플릭스 인기를 타고 ‘구독 경제’ 구호가 한창이더니, 문학계도 바야흐로 ‘메일링 서비스 춘추전국시대’다. 월 구독료를 내고 시나 소설, 에세이 등의 콘텐츠를 이메일로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형태다.

시작은 2018년 ‘일간 이슬아’였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구독료 월 1만원에 짧은 수필을 보내주겠다는 당돌한 제안은 큰 성공을 거뒀다. 창작자들로선 출판사 편집자, 언론사 기자 같은 기존 매체의 허들을 통과할 필요 없이 독자를 직접 만날 수 있을뿐더러, 수익이 오롯이 자기 손에 떨어진다는 점에서도 혁신적 창구로 간주됐다.

◇‘작가들의 러시’에 잡음 인 메일링 서비스

메일링 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직접성’이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 자신들의 작품을 펼쳐 보일 플랫폼이 궁했던 미등단 작가, 신인 작가들이 메일링 서비스로 밀려들었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잡음도 일었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자회사인 ‘난다’는 지난달 7일 오은 시인의 신간 에세이집 ‘다독임’ 출간을 홍보하면서, 책 리뷰를 남긴 독자들 중 일부에게 오 시인의 글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밝혔다.

메일링 서비스가 미등단 작가나 신인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릴 창구로 활발히 이용되자 기존 출판사에서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일었다. 장은정 평론가 SNS 캡처

그런데 이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일부에서 “지면 발표 기회가 적었던 작가들이 스스로 지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생각해낸 메일링 서비스를, 대형 출판사가 유명 작가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고 비판한 것이다. 논란은 난다의 김민정 대표가 “신간 홍보를 위해 문예위에서 운영하는 ‘문장 웹진’의 ‘시인들의 시 배달’ 서비스를 차용해본 것”이라며 “고민과 살핌이 깊고 넓지 못했다”며 발 빠르게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밀레니얼을 위한 시사 뉴스레터’를 표방하는 ‘뉴닉’은 서비스 6개월 만에 4만 구독자를 확보하며 전자우편 뉴스레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 대표의 사과로 일단락됐지만, 과연 이 문제가 논란거리인지에 대해 반론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메일을 통한 콘텐츠 구독이 전에 없이 완전히 새로운 모델은 아니다. 기업이나 시민단체들은 오랫동안 ‘뉴스레터’ 형식으로 고객이나 후원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2001년 시작된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메일링 서비스’의 시초로 꼽힌다. 뉴스를 요즘 젊은이들이 읽기 좋게 2차 가공해서 전달하겠다는 ‘뉴닉’을 비롯,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이메일 뉴스레터를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로 제시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논란 자체가 메일링 서비스의 인기를 보여준다고도 말한다.

◇차별화 전략1 … ‘일간 이슬아’의 진화

구독료 1만원을 내면 이메일로 매일 글을 보내주는 '일간 이슬아'는 ‘메일링 서비스’라는 창작자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이제 메일링 서비스 그 자체만으로는 어필할 수 없다. 이 시장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일간 이슬아’의 진화가 그 증거다. 2018년 서비스 초창기에는 짧은 수필을 주로 배달했다. 요즘엔 인터뷰에다 픽션, 서평, 서간문, 풍문, 친구코너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풍문’은 작가가 믿고 싶은 유언비어를 창작하고, ‘친구코너’는 작가가 소개하고 싶은 동료 작가들을 섭외해 이들의 글을 대신 보내준다. 인터뷰 코너에서는 인기 밴드 ‘새소년’의 멤버 황소윤에서부터 이대목동병원 응급실 청소 노동자인 이순덕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필가를 넘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큐레이터 혹은 기획자의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밴드 '새소년' 멤버 황소윤(왼쪽)과 만난 이슬아 작가. 이 작가는 최근 시즌에서 다양한 인물들과의 인터뷰 글을 메일링 서비스했다. ⓒ황예지

이슬아 작가는 메일링 서비스에 대한 창작자들의 늘어나는 관심에 대해 대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작가는 “간혹 제게 ‘나도 메일링 서비스 방식을 써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저 먼저 시작한 사람일 뿐 전혀 그럴 일이 아니다”며 “대형 자본이든 1인 창작자든, 메일링 서비스 시장에서 살아남는 건 결국 질 높은 콘텐츠일 것”이라 말했다.

◇차별화 전략2 … 미발표 신작에 손편지, 음성파일까지

이슬아 작가의 말은 곧 이슬아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 ‘일간 이슬아’의 성공 요인은 누가 뭐라 해도 짧은 분량으로도 독자들을 웃기고 울린 이슬아의 ‘글맛’이다. 단순히 글 한편, 이메일로 배달해주는 편리 때문이 아니다. ‘계급장 떼고’ 붙는 메일링 서비스 시장에서 누군가의 추천, 후원이나 이름값은 전혀 먹혀 들지 않는다. 때문에 뭔가 남다른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한 후발주자의 전략도 다양하다.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한 달 구독료 만원을 내면 일주일에 두 번씩 일기가 전송되고, 매달 첫 번째 원고와 마지막 원고는 일반우편으로 배송된다.

2016년 등단해 2017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문보영 시인은 2018년 12월부터 ‘일기 딜리버리’를 운영하고 있다. 한달 1만원을 내면 1주일에 두 번씩 일기를 보내준다. 문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이뤄진다. 매달 첫 원고와 마지막 원고 두 편이 작가가 직접 쓴 손편지로 일반우편 봉투에 담아 배달된다.

차도하 시인은 기존 지면의 청탁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의 신작시와 당선작을 구독료를 받고 한 달간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를 선보였다.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차도하 시인은 자작시를 보내주면서 여기에다 음성파일까지 첨부했다. 자신의 시를 자신이 직접 낭독한 녹음파일과 함께 보내는 ‘목소리 메일링 서비스’다.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자인 이원석 시인도 일주일에 한두 통씩 총 100통의 편지를 보내는 ‘편지 100통을 보냅니다’ 메일링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다. 201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차현지 소설가는 ‘급찐살로 고통받는 차현지의 혹독한 일상 관람기’라는 제목으로 몸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메일로 비평을 보내주는 조평일 문학평론가의 ‘비평구독’

시, 소설, 에세이만이 아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김현민은 매주 목요일 영화에 대한 글을 보내주는 ‘목요일 어떻습니까’를 최근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조영일도 ‘메일링 비평구독’을 통해 문학 비평 글을 제공한다.

03명의 창작자가 의기투합한 ‘우롱센텐스’의 ‘월간 우롱’

개인이 아닌 집단 서비스도 있다. 문단 내 성폭력 예방활동 등을 펼쳐온 ‘우롱센텐스’로 널리 알려진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정의현, 이규락, 오빛나리는 ‘월간 우롱’을,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작가 모호연, 다큐멘터리 감독 깅과 지민은 매일 2개의 원고를 보내주는 ‘일간 매일마감’을 운영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작가 모호연, 다큐멘터리 감독 깅과 지민 4명이 의기투합해 매일 2개의 원고를 보내주는 ‘일간 매일마감’

페미니즘을 내건 서비스도 있다.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등의 저자인 이민경 작가는 지난달부터 ‘코로나 시대의 사랑’ 서비스를 시작했다.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과의 상담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해 들려준다. 윤이나, 황효진 작가의 ‘헤이메이트’는 매주 수요일마다 다양한 여성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보내주는 ‘수요일에 만나요’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여성 서사에 대한 의견을 서간문 형태로 메일링하는 헤이메이트의 '수요일에 만나요'

글을 넘어선 서비스도 있다. 뮤지션 이랑을 중심으로 시인, 소설가, 사진가, 요리사 등 30명이 힘을 합친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는 자신의 전공에 맞춘 레시피, 오디오북, 만화, 일러스트 등을 매일 보낸다.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은 스마트폰이나 데스크탑 배경화면으로 쓸 수 있는 그림을 월 5회 보내주는 ‘월간 월페이퍼’를 선보였다.

◇무기는 친밀감 … ‘고립된 소수’에 대한 우려도

누가 구독할까 싶지만 이런 서비스들은 의외로 탄탄한 기반을 자랑한다. ‘일간 이슬아’의 성공을 비롯,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등 7명의 작가가 매일 에세이를 보내주는 ‘책장 위 고양이’ 역시 꽤 안정적인 구독자를 확보했다.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작가 등이 번갈아 에세이를 보내주는 ‘책장 위 고양이’는 런칭 1개월간 150개 이상의 독자 피드백을 받는 등 안정적으로 메일링 서비스 시장에 안착했다.

성공 사례만 보고 뛰어들기엔 위험부담 또한 적지 않다. 메일링 서비스는 창작뿐 아니라 구독자 모집, 홍보, 발송 등 모든 영역의 일을 혼자 진행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슬아 작가가 농담처럼 “일을 맡기고 의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게 편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단순한 텍스트 메일링을 넘어 콘텐츠 기획, 콘셉트 고민 등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멀티형 인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메일링 서비스의 가장 큰 힘이 이메일을 통해 직접 연결됐다는 ‘친밀감’이다 보니 공공성을 잃기 쉽다는 점도 우려된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일종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중간 단계의 점검 작업이 없기 때문에 자칫 자극적이거나 취향이나 관점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린 콘텐츠가 범람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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