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인터넷 업체들이 국회 본회의 입성을 앞두고 있는 이른바 ‘n번방 방지법’에 일제히 반기를 들고 나섰다. 실효성보다 부작용이 큰 법안이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가 졸속 입법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12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와 체감규제포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 등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한 ‘인터넷 규제법(전기통신사업법ㆍ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처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안이 통과되면 인터넷 업계에 심각한 부작용을 끼칠 것이며 위헌 소지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만을 남기고 있는 이들 법안은 n번방 사태 직후 재발 방지 차원에서 발의됐다. 이 중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네이버ㆍ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 삭제 및 접속 차단 의무를 부과했다. 자사 홈페이지나 앱에서 이런 유통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관련 매출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책임자를 지정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매기도록 하고 있다.
업계는 이들 법안이 무리할뿐더러 이용자의 통신 비밀을 침해할 소지가 높다고 본다. 예컨대 카카오톡이나 라인 채팅방에서 불법 촬영물이 공유된다고 해도 모든 대화 내용은 암호화돼 서버에 저장되기 때문에 회사가 이를 단속할 방법이 없으며, 설령 대화 내용 확인이 가능하더라도 기업이 개인간 대화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에서 ‘사적 검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업계와 학계 일부에서 위헌 소지를 주장하는 이유다. 박성호 인기협 사무총장은 “지금도 신고나 요청을 통해 불법 촬영물을 인지하면 기업이 곧바로 삭제하고 있는데, 과도하게 포괄적인 법안으로 처벌 수위만 높여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입법의 계기가 된 n번방 범죄는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해외에 서버를 둔 기업에 책임을 물을 사안인데, 법안 통과가 되더라도 정작 이들 해외업체엔 국내 당국의 집행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텔레그램은 주기적으로 서버를 다른 나라로 옮기면서 비밀리에 서비스를 이어가는 곳”이라며 “우리나라 정부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지금도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을 해도 응답률이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만 겹겹의 규제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국장대행은 “법안이 산업의 중장기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며 “이해당사자들과 협의하지 않은 규제가 대거 포함돼 법안 통과는 물론이고 이후 시행령 개정 과정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반론도 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이날 자료를 내고 인터넷업계의 주장이 “근거 없는 선입견”이라며 “(법안에)민간 사업자에 사적 검열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만한 규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업체 역차별 논란에 대해서도 “법안에 역외규정(해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에 영향을 미치면 법 적용)이 신설된 만큼 규제기관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업계에선 “해외 기업까지 포괄한 공평규제 방침은 바람직하지만 집행력에 한계가 있어 결국 잘 적용되지 않을 것”(박성호 사무총장)이라는 재반론이 나온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