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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상처 난 말이 주는 상처

입력
2020.05.13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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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마주하기에 민망한 말이 있다. 바로 미망인(未亡人)이다. 돌아가신 분의 배우자를 뜻하는 것은 맞으나, 안내판에 당당히 적힐 말은 아니다. 우선 ‘남편을 여읜 여자’로 과부나 홀어미와 비슷한 말이니 존중의 마음을 담은 특별한 표현이 아니다. 게다가 한자를 풀어 보면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명확하므로, 당사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슬픔을 위로할 수 없는 말이다. 남편이 죽으면 산 채로 따라 묻히던 순장 제도에 어원을 둔다 하니,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쓴다고 해도 말릴 일이다. 그러므로 타인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른다면 큰 실례가 된다. 그런데도 오히려 공식적 쓰임에서 미망인이 채택되는 것은 한자어가 격이 더 높은 줄 알고 무작정 따라가는 사회적 차원의 부작용이다.

말의 출처나 의미를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땡깡을 부린다’는 말도 그러하다. 부모가 아이의 고집과 씨름한 경험을 묘사할 때 종종 쓰는데, 부모는 그 말이 힘겹더라도 다 받아줄 만한 귀여운 투정쯤으로 잘못 아는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땡깡 곧 ‘てんかん’[덴간]은 간질병을 뜻하는 전간(癲癎)의 일본어란 점이다. 출처와 뜻을 안다면 자기 아이에게 쉽게 던지지 않을 말이다. 그런 상황에 맞는 우리말로 억지로 쓰는 떼라는 ‘생떼’가 있다.

생채기 난 말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은 익숙함에서 온 섣부른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미망인이나 땡깡은 ‘말은 적당히 써도 되는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먹고 자란다. 출처가 불명확한 말은 오염된 것일 수 있다. 오염된 물은 섣불리 마시지 않는데, 삶 곳곳에 박힌 오염된 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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