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이인영·우상호 등 총선 승리로 위상 강화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출신 ‘86그룹’(1980년대 학번ㆍ1960년대생)이 21대 국회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이들은 지난해 조국 사태를 거치며 세대교체론의 타깃이 되기도 했지만, 4ㆍ15 총선에서 생환하며 정치 생명을 연장했다.
86그룹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힘입어 2000년을 전후해 대거 국회에 입성했다. 약 20년간 정치 권력을 놓지 않은 이들은 더 큰 권력을 향한 꿈을 꾸고 있다. 일부는 ‘슈퍼 여당’의 당권을 노리고 있고, 다른 일부의 시선은 2년 뒤 대선을 향해 있다. 바꿔 말하면, 86그룹이 본격적 정치 시험대에 올랐다는 뜻이다.
◇본격 정치 시험대에 오른 86그룹
86그룹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용퇴론의 중심에 섰었다. 지난해 9, 10월 86세대의 아이콘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도덕성 의혹이 잇따르며 세대교체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어느덧 ‘개혁을 잊은 나태한 기득권 50대’ 가 된 86그룹에 대한 실망과 회의가 퇴진론에 불씨를 댕겼다. 3040세대에 권력의 기회를 넘겨 줘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86세대인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86세대가 사회ㆍ경제적 위기에 처한 2030세대에 그간 답을 주지 못했다면, 2030세대가 그 문제를 직접 풀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86그룹 간판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1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용퇴론에 불이 붙는 듯했다. 뉴스1ㆍ엠브레인의 지난해 12월 여론조사에서 ‘86그룹 퇴진론에 공감한다’ 응답이 66.7%에 달했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이었다. 민주당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운동권 선배’ 원혜영 의원이 ‘86세대가 권력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한다’며 엄호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대교체론이 뻗어 나갈 공간도 사라졌다. 민주당의 86그룹 현역 의원 대부분이 단수 공천을 받았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총선을 거치며 이들의 정치적 위상은 높아졌다. 5선의 조정식ㆍ송영길, 4선 이인영ㆍ우상호ㆍ김태년ㆍ윤호중, 3선 김경협ㆍ박홍근ㆍ박완주ㆍ서영교ㆍ정청래ㆍ이광재 등이 명실상부한 중진으로 21대 국회를 휘젓게 됐다. 1957년생 운동권 출신인 홍영표ㆍ우원식 의원도 4선 그룹에 합류했다. 이해찬 대표(7선) 문희상 국회의장(6선) 원혜영 의원(5선) 등 ‘선배 세대’는 불출마를 선언하며 무대 뒤로 퇴장하게 됐다.
◇당권에 대권도 노린다
독보적 입지를 차지하게 된 86그룹은 당권ㆍ대권 레이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우선 오는 8월 실시되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 86그룹 주자들이 출마를 벼르고 있다. 송영길ㆍ우원식ㆍ홍영표 의원 등이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된다. 이번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김영춘ㆍ최재성 의원 등도 오르내린다.
86세대는 권력의 정점인 대권엔 당도하지 못했다. 올해 말부터 본격화할 차기 대권 레이스엔 주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이광재 전 강원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잠재적 후보군으로 꼽힌다. 우상호 의원은 2022년 서울시장 선거에 재도전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향후 관심사는 86그룹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관계 설정이다. 이 전 총리는 당권을 발판 삼아 대선에 나설지, 대권으로 직행할지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어느 경우든 이 전 총리의 최대 견제 세력이 86그룹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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