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개봉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재즈광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답게 재즈 피아노 선율이 매 장면마다 수놓는다. 우디 앨런이란 이름 자체가 본명 ‘앨런 스튜어트’에다 미국 재즈 음악의 거장 ‘우디 허먼’을 합친 것이다. 그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년)’ ‘카페 소사이어티(2016년)’ 등에도 재즈는 자주 등장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우여곡절을 겪은 영화다. 2년 전 우디 앨런이 의붓딸 성추행 논란에 휩싸이면서 북미 개봉이 취소됐다. 한국에선 이 논란 이전에 영화 수입 계약이 체결된 터라 부득이하게 개봉이 이뤄졌다. 이런 논란에도 11일 기준 누적 관객수(5만848명)로 예매율 2위를 달리고 있다. 재즈의 힘이 크다.
비 오는 날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답게 우수에 젖은듯한 피아노 음색이 극 전반을 지배한다. 들려오는 곡들은 단순히 극 분위기를 살리는 배경음악에 그치는 게 아니다. 주인공인 개츠비(티모시 샬라메)가 처한 상황, 그리고 심리를 묘사하는 하나의 시(詩)다.
어머니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개츠비는 재즈를 좋아하는 한량 대학생. 대학 학보사 기자인 여자친구 애슐리(엘 패닝)가 유명 영화감독을 인터뷰할 일이 생기면서 둘은 뉴욕으로 취재 겸 여행을 떠난다. 평소 선망해 마지 않던 감독, 작가, 배우에 애슐리가 빨려 들어가면서 개츠비와의 관계에 금이 간다.
이 때 개츠비가 피아노를 치며 ‘에브리싱 해픈 투미(Everything happens to meㆍ맷 데니스 작곡)’를 부른다. 프랭크 시나트라, 찰리 파커, 쳇 베이커 같은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전보를 하고 전화를 걸고 우편도 부쳤지만 너의 대답은 작별이었다”는 가사가 귀에 날아와 박힌다. 피아노 연주만으로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일종의 주제가다.
한 눈 판 연인과의 이별을 직감한 채 멍하니 카드 도박에 몰두하는 개츠비를 둘러싼 음악은 재즈 팝송 ‘미스티(Mistyㆍ에롤 가너)’의 피아노 버전이다.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처럼 무력한 나를 봐주세요”라는 가사가 처연하게 느껴진다. 영화 막바지, 안개가 자욱하게 낀 뉴욕 센트럴파크 시계탑 주변을 거닐 때도 흘러 나온다.
재즈 피아니스트 에롤 가너가 연주한 ‘윌 유 스틸 비 마인(Will you still be mineㆍ레드 갈란드)’은 앞선 곡들과 달리 경쾌한 곡이다. 곡 제목이 암시하는 의미와 더불어, 역동적인 대도시 뉴욕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 곳곳에 쓰였다.
짧게 등장하는 카메오 느낌이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도 등장한다. 애슐리가 스타 영화감독과 아직 개봉 전인 영화를 함께 볼 때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3악장 도입부다. 애슐리가 개츠비와 잡은 데이트 약속을 어기고 예정에 없던 영화 리뷰에 참여하면서 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장면인데, 다소 경박하게도 느껴지는 경쾌한 춤곡 풍 음악을 넣어둔 셈이다. 감독의 위트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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