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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코로나보다 무서운 일상

입력
2020.05.13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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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에서 본 서울 하늘의 노을 풍경. 배우한 기자
63빌딩에서 본 서울 하늘의 노을 풍경. 배우한 기자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독사가 확 달려들었다. 혀를 내민 독사 머리가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어떻게 피할 수도 없어 두려움 속에 비명을 질렀다. 바람에 연기가 흩어지듯 독사가 확 달려든 느낌이 너무 선명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안은 아직 어두웠다. 늦잠 자면 개꿈을 꾼다던데, 왠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밀려왔다. 아침을 먹고 평소처럼 학교 연구실로 출근했다. 코로나 때문에 교문만 개방해 두고 다른 출입구는 폐쇄하고 있다. 평소 후문을 이용하는 나는 울타리를 살짝 넘어 다닌다.

요즘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체험하고 있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책상에 앉는 순간부터 강의 준비를 한다. 그 작업을 마치면 주로 글을 쓴다. 저술을 하거나 논문이나 칼럼을 적는다. 그래서 깊은 생각의 샘터로 나가야 한다. 어떤 글이든 첫 줄, 첫 페이지가 어렵다. 자판에 손을 얹고 주제에 집중하고 있으면, 번득이는 영감이 떠오른다.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집중하다 보면, 벌써 점심때다. 평소 다니던 식당은 코로나 창궐로 예약손님만 받고 있다. 낯선 이가 들렀다가 확진자로 밝혀지면 식당이 폐쇄당할까 두려워서다. 점심 후에는 단골 카페로 간다. 커피 맛이 좋아 붐비던 곳인데, 완전 썰렁하다. 커피 내리는 사장님은 근심이 가득하다. 사람끼리 부대끼며 생활하는 세상에서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하는 시절이다.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말도 드리기 미안해서 커피만 들고 나와 연구실로 향한다.

저마다 기근으로 메마른 들판에 서 있는 것과 같은 힘든 상황이다. 대낮인데도 학교 주변에는 인적이 뜸하다. 학교에 머무는 교수들도 많지 않아 복도에는 적막이 흐른다. 오후에 여유를 찾아 하늘을 쳐다보고 태양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한다. 얼마 전부터 석양 사진을 찍어 오고 있기에 해가 있을 때 집에 가려고 한다. 좀 늦게 퇴근하면 마음이 급하다. 총총걸음으로 전철역을 향하는데, 저 멀리 사거리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나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10초가량 남은 때 횡단보도에 들어섰다. 그런데 도로 한복판에 들어섰을 때, 때마침 불어온 강풍에 모자가 벗겨져 굴러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달려가 모자를 집으려던 중에 벌러덩 넘어져 버렸다. 직진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과 보행자들 앞에서 사거리 중앙에서 누워 버린 모습이 되었다. 신호가 바뀌어 차량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때, 겨우 그 곳을 벗어났다.

서두르지 않아야 하는데, 초록신호등을 보면 늘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후 거실에서 태양의 위치부터 본다. 도회지는 아파트가 빼곡하여 원경을 조망하기 어려운데, 우리집은 거실에서 서산까지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다. 노을진 하늘에 뭉게구름이 둘러쳐져 있고, 그 주변을 태양이 지날 때 멋진 장면이 나온다. 태양은 급류에 떠내려가는 축구공처럼 금방 서산으로 잠겨 버린다. 온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가득했던 태양이 석양 앞에 힘없이 소멸되는 모습을 본다.

저녁 뉴스를 보고 있을 때 핸드폰 문자 메시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 밤중에 감염병 환자 발생했다는 문자를 보내나 싶어 확인해 보았다. “우리 아들이 오늘 새벽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여 외부에는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부고다.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꽃다운 젊은 나이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간 안타까운 소식이다. 며칠 전 청년 취업의 어려움을 나누며, 지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격증을 준비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을 들었다. 코로나가 깨끗이 물러가면 새롭게 출발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를 영정사진으로 만나게 되었다. 마스크만 잘 쓰면 안전할 거 같았는데, 그보다 중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바로 곁에 있음을 보게 된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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