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현의 신일본, 신인류] “한국을 배우자” 혐한 정서 바꿔나가는 K-방역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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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의 신일본, 신인류] “한국을 배우자” 혐한 정서 바꿔나가는 K-방역의 힘

입력
2020.05.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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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떨어지는 아베 지지율 

인도 뉴델리 인디라간디국제공항 활주로 위에 백혈병에 걸린 한국인 어린이를 태울 일본항공(JAL) 특별기가 대기하고 있다. 뉴델리=연합뉴스

“이거 읽어 봤어? 일본이 한국 도와줬대.”

아내가 놀란 표정의 이모티콘과 함께 요미우리신문의 기사 링크를 하나 보내 왔다. ‘인도에 사는 백혈병에 걸린 5세 한국 어린이의 귀국을 위해 일본 항공사와 법무성 외무성이 협력했고, 이러한 선의의 조치에 대해 한국 외교부의 강경화 장관이 고마움을 표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포털 사이트를 보니 비슷한 기사가 금세 검색됐다. 양국 매체가 비슷한 논조로 공인한 내용이니 별 문제가 없는 기사라고 할 수 있겠다. 아내는 일본인이라 이 놀라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응. 근데 한국이 일본 도와주거나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협조한 사례 찾아보면 꽤 많을걸?”

이렇게 답장을 보내자 아내는 다시 놀라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아내는 그런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보도 자체를 안 하거나, 보도해도 크게 싣지 않는다. 이번 ‘어린이 귀환’ 건은 양국 매체가 대대적으로 보도한 덕분에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때 해외에 사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본국 귀환을 위해 양국이 협력한 사례는 매우 많다. 누가 먼저냐, 더 도왔냐 따지기 이전에 4월 한 달간만 봐도 다음과 같다.

 ◇코로나19 사태 뒤편의 한일 공조 

먼저 한국정부가 마련한 전세기에 마다가스카르, 케냐 등에 살고 있던 일본인 7명이 탑승했다. 일본국제협력단(JICA)이 마련한 수단발 전세기에는 한국인 6명이 탔다. 한일 양국의 국제협력단이 공동으로 마련한 전세기를 이용해 카메룬의 한일 국민이 동시에 귀환하기도 했다.

인도 뱅갈로드의 도요타자동차 일본인 임직원들이 철수할 때는 일본정부의 제안으로 한국인 2명이 타고 귀국하기도 했다. 한국정부의 필리핀 전세기에 일본인이 탑승한 적도 있었다. 모두 4월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양국 보도 사례를 꼼꼼히 살펴보니 10건 정도의 한일 공조가 이뤄졌다.

다만 이번 인도의 한국 어린이만큼 비중 있는 뉴스로 다뤄지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백혈병 어린이라는 소재, 일본 정부기관이 전폭적으로 협조 같은 서사적 요소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 하네다 공항에 내려 육로로 나리타 공항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법무성이 관여해야 했는데, 깐깐하기로 소문난 법무성이 한국 어린이 본인과 가족 등에 대한 임시비자 발급을 전례 없이 신속하게 처리했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선 ‘철의 여인’ 이미지가 강한 강경화 장관의 ‘감사’ 표시가 일본 언론에겐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 듯하다. 물론 이 뉴스가 한일 양국 포털사이트 메인 뉴스에 걸리면 거기엔 반드시 우리가 먼저 도왔네, 하는 댓글이 달린다. 도와줄 필요가 없다거나, 우리가 더 도덕적이네, 하는 잔인하거나 혹은 ‘국뽕’ 류의 댓글도 나온다.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인터넷 대중화 이후 양국 네티즌들의 전통놀이 정도로 본다.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한일 양국 당국자들이 이런 전통놀이(?)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한일 양국 관계가 워낙 엄혹하다 보니 별별 걱정을 다 하는 셈이다. 이 걱정에는 우선 일본사회, 특히 정치와 언론의 질적 하락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로 일본 사회의 어이없는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어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긴급사태 선언 기간을 이달 말까지 연장하는 방침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도쿄 시내 대형전광판을 통해 방송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장기집권, 비판 사라진 일본 사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8년째로 접어든 아베 정권의 장기집권이다. 모든 권력은 장기화되면 부패한다는 법칙을 몸소 실현하고 있다.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헐값 매입에 관한 의혹이 2017년에 처음 등장한 이래 아베 총리는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둘러싼 의혹(2017년), 벚꽃 모임(2015-2019년), 국가공무원법 위반(2020년) 등 수많은 스캔들에 휩싸였다. 장기집권 정권에서 이러한 스캔들은 나올 수 있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러한 정권의 부패와 스캔들이 나오면 언론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비판과 감시로써 권력을 정화시켜야 한다.

일본의 문제는, 지금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위의 각종 스캔들을 취재한 거대 미디어는, 모리토모 학원문제를 최초로 보도한 아사히신문 정도에 불과하다. 모리토모 이외 스캔들은 오히려 ‘주간문춘’으로 대표되는 주간지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야당 의원들이 ‘주간문춘’ 기사를 인용하며 아베 내각을 공격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인터넷은 더 심하다. 아베 정권을 비판하면 이내 ‘아베응원단 댓글부대’의 비난 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내각관방실 혹은 내각정보조사실에서 운영하는 것이 확실시되는 이들 댓글부대의 행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젠 성의조차 없다. 인터넷 몇 번만 뒤져보면 금방 알 법한 가계정을 동원한 ‘복사+붙여넣기 기법’을 사용한 트윗과 댓글로 아베 내각을 노골적으로 응원한다. 한 건당 세 줄 이상 30엔이라는 시세 가격도 나와 있다.

또한 외무성과 후생노동성은 보정예산항목에다 아예 ‘코로나19 정책 비판체크 – 감염증을 둘러싼 부정적인 대일인식을 불식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등 인터넷을 통해 상황과 대책에 관한 정보발신 확충’ 항목으로 각각 24억엔(한화 약 270억원)을 공개 편성해뒀다. 말이 좋아 정보발신 확충이지 비판여론을 없애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 속내는 아무도 모른다. 그 어떤 미디어도 취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의 비판기능이 사라지다 보니 어느새 사라졌던 혐한 서적 코너가 슬금슬금 부활했다. 한 나라를 근거 없이 비난하고 혐오하는 이러한 서적만 모아 특집코너를 만든다는 건, 정상적 사회라면 상상하기 힘들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보자. 한국의 교보문고 등에 ‘혐일서적’ 코너가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취재 기사, 역시 본 적이 없다. 어느새 윗사람의 의중을 헤아려 알아서 기는 ‘촌탁(忖度)’ 문화가 보편화됐다. 대안 정치세력은 멸종했고, 방송 언론은 2019년 7월 수출규제 이후 연일 혐한 키워드로 화면을 채웠다. 코로나19 정국 초기에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아베 정권을 비판하지 않았고, 초기방역대책인 ‘클러스터 부수기’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시민들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점심을 먹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자 도쿄 등 기존 7곳에 내렸던 긴급사태 선언 지역을 일본 전역으로 확대했다. 도쿄=AP 연합뉴스

 ◇코로나19 헛발질에 일본시민도 각성 

이런 망조가 보이는 요즘에야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국의 방역대책이 세계의 모범이라 하니 그제야 한국을 배우겠단다. 한동안 뜸했던 강상중 교수는 지난 3일 방영된 TBS ‘선데이모닝’에 나와 일침을 놨다. 다른 일본인 출연자들이 한국, 대만의 방역을 칭찬하면서도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루는 건 코로나19 이후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발언하자, 강 교수는 “그건 권력에 비해 시민사회가 약한 사회에서나 그런 것이고, 한국은 시민사회의 힘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독재권력 이런 거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오히려 일본처럼 시민사회의 힘이 매우 약한 나라가 큰 문제”라고 되받아 쳤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 관련 뉴스가 많아지면서 일본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대표적 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권 지지율이 떨어진 국가는 일본과 브라질 정도다. 아베 정권에 문제 있다는 걸 일본 국민들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아베 정권이 코로나19 와중에 슬쩍 검찰청법을 고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해시태그 트위터 시위가 200만명을 돌파한 것도 한 사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과는 별개로 한일 양국의 인도적 차원의 공동대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발견하면 적군이든 아군이든 가리지 않고 치료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앞으로도 두 나라의 인도적 공조가 양국의 여론과 상관없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박철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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