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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경비원 아저씨 기억할게요” 촛불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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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경비원 아저씨 기억할게요” 촛불 추모식

입력
2020.05.11 19:01
수정
2020.05.12 00: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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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내 이중주차 차량 이동 중 입주민과 언쟁, 수차례 폭행 당해

유서 남기고 극단적 선택… 경비실 앞 분향소에 주민 추모의 글 가득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아파트 주민들이 전날 운명을 달리한 경비원 최모(59)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김영훈 기자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아파트 주민들이 전날 운명을 달리한 경비원 최모(59)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김영훈 기자

“다른 동 주민이라도 항상 나와서 따뜻하게 맞아준 분이었어요.”

11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북구의 S아파트 경비실 앞에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하얀 국화꽃과 배, 사과, 곶감과 함께 고인이 된 경비원 최모(59)씨가 좋아한 막걸리가 놓였다. 최씨가 생전 근무한 경비실 유리창에는 입주민들이 손으로 쓴 30여 장의 쪽지가 붙어있었다. ‘임신했을 때 같이 좋아해주셨는데 너무 안타까운 일이 생겨서 원통하고 슬프다’ ‘항상 웃으며 인사해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등 최씨를 추모하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최씨를 보내지 못하는 아파트 주민들은 하루 종일 경비실 앞을 서성였다. 유치원생인 김모(5)군도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분향소에서 조문을 했다. 한 중학생은 촛불 추모식을 위해 스케치북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썼다.

최씨는 전날 오전 2시쯤 서울 강북구의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 주민의 폭행으로 입원해있던 최씨는 돌연 병원에서 나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억울하다’는 내용을 남겼다.

S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21일 심모씨와의 언쟁을 시작으로 수 차례 폭행을 당했고, 협박 문자를 받았다. 최씨가 이중주차된 심씨의 승용차를 밀자 격분한 심씨가 “경비원 주제에 우리가 주는 돈으로 받아 먹으면서 뭔 짓이냐”며 최씨의 얼굴을 쳤다고 한다. 이후에도 심씨는 최씨를 관리소장 앞으로 끌고가 “당장 사직서를 쓰라”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안 화장실. 경비원 최모(59)씨가 생전에 착용한 근무복과 모자가 걸려 있다. 입주민들은 이 화장실은 최씨가 폭행을 당한 장소다. 김영훈 기자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안 화장실. 경비원 최모(59)씨가 생전에 착용한 근무복과 모자가 걸려 있다. 입주민들은 이 화장실은 최씨가 폭행을 당한 장소다. 김영훈 기자

최씨 유족들에 따르면 폭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심씨는 폐쇄회로(CC)TV가 비추지 않는 경비실 내 화장실로 끌고가 머리채를 잡고 흔들며, 주먹으로 머리를 수 차례 폭행했다고 한다. 코뼈가 부러질 정도의 폭행이었다.

폭행 사실은 지난 3일에야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아파트 주민 A씨는 “밖에서 소란이 있어 내다 보니 최씨가 헐레벌떡 경비실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가 다른 주민들과 함께 밖에 나와 최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그제서야 최씨는 “심씨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최씨의 사망에는 전조가 있었다. 이달 4일 자정 최씨는 죽음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극단적인 시도를 하려 했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막았다. 최씨의 형 최광석씨는 “폭행을 한 심씨가 오히려 자기가 피해를 입었다며 진단서 사진을 보내왔다”며 “동생이 심씨의 협박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심씨는 폭행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사실관계가 많이 다르다”면서 “나 역시 최씨를 모욕 혐의로 고소를 했었다”고 밝혔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심씨에 대한 출석을 요구하는 중”이라며 “고소인이 사망했지만 폭행 수사는 계속한다”고 밝혔다.

S아파트 주민 100여 명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약 30분간 최씨를 위해 촛불 추모식을 열었다. 황모씨는 “우리 모두가 항상 따스했던 최씨를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했다. 최씨 유족들은 “고인이 주민들에게 감사할 것”이라면서 “12일 발인에 앞서 운구차가 아파트를 돌 예정”이라고 말했다.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학생들이 고인이 된 경비원 최모(59)를 위한 촛불 추모식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학생들이 고인이 된 경비원 최모(59)를 위한 촛불 추모식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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