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반도체 자급’ 추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한국ㆍ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위기시 공급망 혼란을 줄이려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도 중요도가 높은 이 분야 기술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최대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 대만 TSMC 등과 자국 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건립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도로 삼성전자 미국 공장의 증설도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10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가진 기업은 이들 세 곳 정도다.
코로나19 사태가 논의의 기폭제가 됐다. 아시아 공급망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내 공장 확충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대만ㆍ중국ㆍ한국은 미국 디지털경제의 삼각 의존 축”이라며 “특히 대만은 유사시 미국의 크고 중요한 기술 기업을 한꺼번에 멈춰 세울 수 있는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미국 정부의 자립 의지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WSJ은 “현대 군사장비의 필수가 된 첨단 반도체에 경쟁국인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점이 당국과 업계의 큰 걱정거리”라고 지적했다.
이에 인텔은 “상업적으로도 좋은 기회여서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보도에 따르면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8일 미 국방부에 서한을 보내 “상업용 반도체 칩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위해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며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미국 내 핵심 제품 생산과 기술 주도력을 유지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TSMC도 미 상무부ㆍ국방부 및 주요 고객사인 애플 등과 관련 사항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명에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미 행정부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미 텍사스주(州) 오스틴에서 운영 중인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확장하도록 지원하자는 제안도 나온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비투자 관련 사항은 민감한 경영정보”라며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가 예정돼 있기는 하지만 이는 유지ㆍ보수 수준으로 외신이 보도한 것과 같은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에게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것은 자급만큼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대규모 투자에 나선 상황이다. WSJ은 “미국이 최근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를 강화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는 미국 기업이 중국에 비(非)군사 용도의 반도체를 수출할 때도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강화했고,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TSMC에서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