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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임계장’의 목소리 “살아보고자 아파트 경비일 했을텐데…”

입력
2020.05.11 15:34
수정
2020.05.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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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폭언에 극단 선택한 아파트 경비원 소식에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씨 “억울해 스스로 던진 것”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이 비어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뉴시스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이 비어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뉴시스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던 50대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을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이름마저 잃은 채 ‘임계장’, 즉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노인 노동자의 현실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임계장 이야기’의 작가 조정진(63)씨는 10일 해당 경비원의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과거 인터뷰했던 유튜브 영상에 “이런 억울한 죽음을 막아보려고 병상에서 모르핀 진통제를 맞아가며 책을 썼는데 세상은 외면하는 것일까”라는 댓글을 남겼다. 조씨는 같은 내용의 글을 여러 언론사에 보냈다. 같은 날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던 최모(59)씨는 주차 문제로 입주민에게 지속적인 폭언 및 폭행을 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공기업에서 38년동안 일하다가 퇴직 후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주차관리원 등으로 일했다. 현장에서는 조씨인 그를 ‘임계장’이라고 불렀다. 일용직이라 사람이 하도 바뀌다 보니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임계장으로서의 노동 경험을 담은 책을 펴냈다. 조씨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첫 날 아파트 경비원 한 분이 투신하였는데, 또 다시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어 “진솔하게 사정을 알리면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개선이라도 분명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책 ‘임계장 이야기’(왼쪽 사진)를 조정진씨가 10일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 사망한 경비원의 소식에 과거 자신이 인터뷰했던 CBS 시리얼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심경을 밝히고 있다. CBS 시리얼 유튜브 캡처
책 ‘임계장 이야기’(왼쪽 사진)를 조정진씨가 10일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 사망한 경비원의 소식에 과거 자신이 인터뷰했던 CBS 시리얼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심경을 밝히고 있다. CBS 시리얼 유튜브 캡처

한국 사회에서는 60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4명 꼴인 450만명이 여전히 노동시장에 있지만 이들의 처우는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쉬워 ‘고ㆍ다ㆍ자’라고 불릴 정도다. 조씨는 “저의 책(임계장 이야기)에 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오래된 아파트, 이중ㆍ삼중 주차. 폭언ㆍ폭행”이라며 “억울해도 말할 곳이 없어 서럽고, 노조도 없고, 노동청이나 구청에 신고해도 아파트의 눈치를 먼저 살핀다”고 경비원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나이 60이 넘어 아파트 경비원 하는 노인이 살아보고자 아파트 경비를 했지, 이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했겠나”라며 “억울하고 분해도 말할 곳도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어 그냥 스스로를 던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씨는 “그냥 노인 경비원 하나 죽은 일이라고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며 “분명한 사회적 타살이므로 그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입법을 통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쓰러져 해고된 후 지금은 한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는 조씨는 세상을 떠난 경비원을 조문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는 “지금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빈소에 조문도 갈 수 없다”며 “하루를 쉬려면 대체근무자를 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혼자서 엉엉 울다가 문득 이렇게라도 호소하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며 “그분도 살기 위해 노동을 한 것이지 그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한 것이 아니다. 저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달라. 간절히 소망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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