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왜 광주의 시민군들은 그 자리에 남아 계엄군을 맞이했을까. 소설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정도상 작가는 11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꽃잎처럼’을 집필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꽃잎처럼’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의 열흘간의 이야기를 26일 저녁 7시부터 27일 새벽 5시 이후까지의 시간으로 압축해낸 소설이다. 그 시간은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향해 1만여 발의 총알을 퍼부어 도청에 남아 끝까지 항전하던 시민군을 살상한, 하룻밤의 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 도청에 남은 시민군은 모두 157명. 이들은 최후의 항전, 쉽게 말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죽을 작정을 하고 남아 있었다. 정 작가는 야학 출신의 스무 살 청년 명수를 화자로 내세워 도청에 남아있던 이들의 실존적 고민을 담아낸다.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과 들불야학 교사였던 박기순을 비롯해 소설 속 등장인물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다.
정 작가는 5ㆍ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계엄군의 트라우마를 다룬 단편 ‘십오방 이야기’가 1987년 전남대의 오월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정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상처받은 공수부대원의 이야기로 데뷔한 것은 저에게도 오랜 숙제였다”며 “5ㆍ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이제는 상처받은 시민군의 이야기를 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렇다면 정 작가가 생각하는, 시민군이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날 도청에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백기를 들고 계엄군을 맞이하는 것과,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피 묻은 깃발을 들고 계엄군을 맞이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패배할 것을 알지만 지금 이 순간의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바로 그 순간이 있었기에 이후의 6월 항쟁과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이어지는 민중 민주 운동사의 한 흐름이 생겨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5ㆍ18이 단순히 숫자 세 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생명과 사랑의 고뇌, 죽음 앞의 공포 같은 실존적 고민을 모든 분들이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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