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은 크림전쟁(1853.10~1856.3) 전장에서 영국 정부가 파견한 간호부대를 이끌며 부상병을 돌본 ‘백의의 천사’다. 런던 여성병원 간호부장이던 그가 ‘천사’인 건 야전병원에서 펼친 헌신 때문이지만, ‘백의’인 까닭은 위생을 중시해 간호사들에게 항상 깨끗한 흰 옷을 입게 해서였다.
메리 제인 시콜(Mary Jane Seacole, 1805~1881.5.14)은 ‘군인들의 어머니’ 혹은 ‘찻잔을 든 크레올 여성(The Creole with the Tea Mug)’이라 불렸다. 그가 식민지 자메이카에서 영국 주둔군 아버지와 현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어서, 야전병원의 공식 간호사가 못 돼 ‘브리티시 호텔’이라 이름 붙인 간이시설을 세워 운영한 비공식 자원 간호사여서였다.
킹스턴에서 병든 병사들에게 숙식과 치료 및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 보건소를 운영한 어머니 덕에 시콜은 어려서부터 의술을 익혔다. 그는 1844년 어머니가 숨진 뒤 보건소를 이어받았고, 1850년 자메이카를 강타한 콜레라 사태 등을 겪어냈다.
그는 10대 때부터 영국과 바하마, 아이티, 쿠바 등지를 여행한 열정적인 방랑자였다. 보건소를 접고 여행을 다니면서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전통ㆍ현대식 의료 지식을 익히며 수시로 환자를 돌봤다. 보따리 중개무역으로 여비와 생활비를 벌었고, 파나마에 작은 가게를 운영했으며, 적으나마 금광에 투자하기도 했다.
크림전쟁 간호사 모집 공고를 보고 자원한 그는 거부당했다. 모집 기간을 넘겨 자원하기도 했지만, 여러 현지인들의 추천서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공식 의료 경력이 없었고, 무엇보다 백인이 아니어서였다. 나이팅게일에게도 편지와 면담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도울 기회를 청했지만 거절당한 뒤 그는 자비로 전장 인근에 간이 시설을 차렸다. 병사들에게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팔아 진료 비용 일부를 충당했고, 항구의 파병ㆍ귀환 병사들에게는 늘 차를 제공했다.
전쟁이 끝난 뒤 빚에다 병까지 얻어 돌아온 그를 도운 건 전장에서 은혜를 입은 군인들이었다. 자신의 여행기와 전장 이야기를 기록한 ‘시콜 여사의 원드풀 어드벤츠(1857)’도 출간했다. 비백인 여성 최초의 여행기였다. 크림전쟁 100주년이던 1954년 자메이카 간호협회는 본부 건물을 ‘메리 시콜 하우스’라 명명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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